
미국은 법령을 통해 교통약자의 항공 이동권을 명확히 보장하고 편의시설 설치를 의무화했다. 반면 한국은 관련 규정이 전무해 교통약자들이 이동권 사각지대에 놓이고 있다. 교통약자라는 공통점은 같았지만, 권리 보장에 있어 미국과 한국은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국내외 이동권 격차 심화…일찍이 권리 보장 나선 미국
뇌병변 장애인 김도경 씨(20대)에게 항공기 이용은 ‘고난의 연속’이다. 항공권 예매부터 탑승까지 수차례 휠체어를 갈아타야 하고, 이동 설비 부족으로 직원 등에 업혀 비행기에 오르다 부상을 입는 경우도 있다.
“비행기를 타는 날이면 남들보다 1~2시간씩 일찍 공항에 가고, 여러 번 휠체어에 타고 내리는 과정을 겪어요. 해외의 경우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시도에 나서는 데 한국에서는 그런 변화가 없어 아쉽죠.” (김도경 씨)
이 같은 불편은 국내에는 기내 휠체어 보관을 의무화한 법적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항공사가 휠체어 기내 반입을 허용하지 않고 구조적으로도 적재가 불가능해 화물로 실어야 하는 실정이다.
반면 국내와 달리 미국의 경우 기내에 휠체어를 보관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미국의 항공기탑승관리법(ACAA)에 따르면 기내(100석 이상)에 수동 휠체어를 보관할 수 있도록 일정 규격(13인치‧36인치‧42인치)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또 휠체어 보관을 다른 수하물보다 우선시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특히 미국은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내 휠체어 전용 좌석 설치에도 나섰다.
미국의 주요 항공사인 델타항공의 자회사 델타항공 프로젝트(DFP)는 2023년 6월 ‘기내 휠체어 전용 좌석’ 디자인을 선보이며 일찍이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에 나섰다. DFP가 선보인 휠체어 전용 좌석은 기존 좌석을 개조하지 않고도 휠체어를 고정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DFP의 이 같은 시도는 교통약자들이 여러 차례 휠체어를 갈아타거나 휠체어에서 내려 좌석으로 옮겨타는 등 탑승 과정에서 겪는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추진된 것이다. 특히 미국연방항공청과의 협력을 통해 교통약자 이동권 개선에 나섰다는 점이 국내 교통약자들의 이목을 끄는 대목이다.

한국 교통약자 항공기 이동 편의 “더 나빠져”
국토교통부가 매년 교통약자들의 이동 편의시설 현황을 조사하고 있는 가운데 항공기 편의시설 적합도는 크게 하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통안전정보관리시스템의 교통약자 이동 편의시설 설치 현황에 따르면, 2023년 항공기의 교통약자 이동 편의 시설 기준 적합 설치율은 73.9%로 집계됐다. 이는 2016년(98.7%) 대비 24.8%p나 낮아진 수치다. 반면 같은 기간 교통약자 인구 수는 전체 인구의 30.9%인 1586만4000명으로 매년 증가세를 띄고 있다. 교통약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이동 편의 서비스 비율은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항공기 탑승 과정에서 발생하는 장애인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공항공사에 제도적 보완을 권고한 바 있다. 당시 국가인권위는 한 공항공사에 여객 탑승교와 항공기 연결 높이차 제거 요청 권고를 했으나, 항공기와 탑승교 사이의 높낮이 차는 여전히 제거되지 않았고 안전 발판도 마련되지 않았다는게 교통약자들의 입장이다. 국토부의 휠체어 승강설비 관리·감독 역시 미흡한 상태라고 주장한다.
해외 항공사들이 기내 휠체어 좌석 도입 등 이동권 보장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과 달리, 국내 항공사는 개선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해외와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전 대표는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해외는 공항과 항공사, 법률이 연계돼 탑승 편의와 안내가 명확히 이뤄지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교통약자 서비스 관련 법령이 구체적이지 않은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국민 10명 중 3명은 교통약자”라며 “항공기 이용에 있어 편의시설이 떨어지거나 차별받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교통약자들을 위한 이동권 보장 가이드라인을 관련 기관에 제공해 책임 있는 추진을 해야 된다”며 “그래야만이 교통약자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항공기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