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보여준 감동 사연… 한국판 ‘치킨스프’ 될까

이준범 / 기사승인 : 2021-02-10 1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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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뉴스가 소비되는 모습에 허탈할 때가 많다.

우리 사회의 숨겨진 진실과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기자들이 몇 달 동안 취재해 한 글자 한 문장 정성껏 쓴 기사는 금세 파묻혀 버린다. 반면 SNS에 뜬 유명인의 말이나 우연한 해프닝을 담은 사진 한 장으로 후다닥 쓰인 기사는 수십만 수백만 명에게 회자된다. 거기에 달리는 댓글도 조롱과 분노, 비난을 넘어 억측과 손가락질, 선동으로 얼룩져 있다.

절망을 느낀다. 과연 딱지 붙이기, 편 가르기, 싸잡아 침 뱉는 뉴스를 넘어 이 세상은 그런 것만이 아니라고, 마음을 조금 열고 ‘나는 나답게 꿋꿋하게 살아도 된다’고 얘기해주는 뉴스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차라리 뉴스를 보지 않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기자라는 직업이 과연 내 인생을 바칠만한 일일까. 회의감이 차오르던 그 때, ‘아살세’를 만났다. ‘아살세’는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는 국민일보 온라인뉴스팀의 기사 코너 이름이다.

지하철에서 생긴 응급상황에 시민들이 힘을 합쳐 도움을 주었다는 얘기였는지, 비 오는 날 치킨 배달을 시켰다가 미안한 마음에 건넨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사장님이 기뻐했다는 얘기였는지.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기자도 눈물을 글썽이며 ‘아살세’ 기사를 읽었다.

‘아 이런 기사는 사람들이 좀 많이 보면 좋겠다, 정말로.’

더 감동적인 장면은, 아살세 기사에 수백 수천개의 댓글이 달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퍼 나를 때였다. 사랑과 감동이 미움과 분노를 이길 수 있다고, 정치인들의 화살 같은 이야기보다 동네 꼬마의 솜사탕 같은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다고 ‘아살세’는 보여주었다.


한번 읽고 잊어버리기에는 아까운 ‘아살세’의 이야기들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책 제목은 ‘마침 그 위로가 필요했어요’. 책을 펴 한 장 한 장 다시 읽으며 또 눈시울이 붉어진다. 절망에 빠진 기자에게 위로를 주었던 ‘아살세’가 이번엔 책으로 새로운 독자를 만나고 더 오랫동안 기억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과거 월간잡지 샘터에서 발간한 ‘노란 손수건’ 시리즈가 있었다. 잡지에 실린 감동적인 이야기를 묶은 책이지만, 출처가 불확실하고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보다 훨씬 뒤 영미권에서 비슷한 콘셉트의 책 ‘내 영혼을 위한 치킨스프’가 출간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책을 읽으며 ‘우리 주변에도 이런 따뜻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을 텐데’라는 생각도 했다. 어느 신문사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의 독자 사연을 실은 것도 비슷한 취지가 아니었을까.

‘마침 그 위로가 필요했어요’가 한국판 ‘치킨스프’ 시리즈가 되면 좋겠다. 책을 읽은 독자들이 ‘나도 이런 일을 겪었어요’ ‘나도 이런 사람을 보았어요’라고 마음 따뜻한 사연을 보내고, 그 이야기들을 묶어 시리즈 2편, 3편이 나오고, 영어로 중국어로 일본어로 번역되고, 그래서 ‘아살세’ 자체가 사람들에게 ‘사랑은 미움을 이긴다’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되면 좋겠다. ‘아살세’가 어느 기자에게 위로를 주었던 것처럼 지금 생의 어두운 골목에 주저앉아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