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발신제한’ - 폭탄 차량에 오른 아버지의 과감한 질주

이준범 / 기사승인 : 2021-06-23 06:00:03
- + 인쇄

영화 '발신제한' 포스터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지금 당신의 의자 밑에는 폭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 걸려온 전화 한 통.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흘러가야 했던 하루가 완전히 뒤바뀌는 순간이다. 영화 ‘발신제한’(감독 김창주)은 이 전화를 시작으로 이야기에 시동을 걸고 도심을 질주한다. 대체 무엇에서 시작된 일인지도, 어디로 향할지도 알 수 없다. 전화를 받은 주인공 성규(조우진)의 마음 상태와 선택에 관심이 집중될 뿐.

‘발신제한’은 자신도 모르게 설치된 폭탄을 의자 밑에 두고 부산 시내를 질주하는 은행센터장 성규의 이야기다. 평범한 아침 의문의 전화를 받은 성규는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는 말을 가볍게 무시한다. 하지만 동료의 차가 폭탄에 터지고 뒷자리에 앉은 아이가 부상을 당하자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알게 된다. 범인의 요구조건을 들어주느라 바쁜 성규를 경찰이 테러범으로 지목하고 뒤쫓기 시작한다.

‘발신제한’을 평범한 장르 영화에 머물지 않게 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과감한 시도다. 영화 내내 성규는 자동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답답한 공간 특징으로 인물의 감정 변화를 유도하고, 도로를 달리는 특징을 이용해 카체이싱 액션을 벌인다. 좁지만 이동이 가능한 개인의 일상 공간을 영화의 무대로 삼은 점이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부산의 도로를 오가는 장면들은 영화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진행된 촬영과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우직함이 더해져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영화 '발신제한' 스틸컷

또 하나는 장르의 전환이다. ‘발신제한’ 초반부를 보면 알 수 없는 범인의 협박으로 제한된 상황에 처하고 그와 협상을 벌이는 좁은 공간의 스릴러 영화 여러 편이 떠오른다. 기존 문법을 따라가던 영화는 어느 순간 가던 길을 이탈해 새로운 영역으로 이동한다. 처음부터 규정된 예상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는 인물의 선택과 그 순간 생성되는 놀라운 에너지는 ‘발신제한’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안전한 길을 벗어나는 주체성을 보여주는 인물과 이야기는 언제 봐도 흥미롭다.

아쉬운 점도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교훈적인 이야기로 흐른다는 점, 주인공 외 인물이 가볍게 소비된다는 점이다. 특히 배우 이재인이 맡은 성규의 딸 혜인이 보조적 역할에 그친다는 점은 아쉽다. 배우의 연기가 빛나서 더 그렇다.

‘발신제한’으로 첫 주연을 맡은 배우 조우진은 분량과 비중이 늘어나도 연기의 무게감과 설득력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극한 상황에 처한 인물의 감정을 과한 액션과 고성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건 다른 배우들도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