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끝낸 후 원피스 입고 시험쳤다” 이것이 갑질이 아니라면

이소연 / 기사승인 : 2021-07-17 06: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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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청소노동자들이 지난 9일 시험을 치르는 모습. PPT에는 시험 관련 설명과 함께 “점수는 근무성적평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사진=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제공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서울대학교에서 기숙사 청소노동자에게 필기시험을 치르게 하고 회의 시간 ‘드레스코드’를 요구해 논란이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16일 고용노동부는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서울대 청소노동자 ‘직장 내 괴롭힘’ 문제 제기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며 “조사 결과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이 확인될 경우, 대학 측에 개선 방안 및 재발 방지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등 개선을 지도한다. 불이행할 경우, 근로감독 실시도 검토할 계획이다. 

지난달 26일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였던 고(故) 이모(59·여)씨가 건물 내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심근경색에 의한 병사였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와 유가족은 건강하던 고인의 사망 이유로 과도한 업무와 갑질로 인한 스트레스를 지목했다. 동료들도 증언에 나섰다. 

서울대 중간관리자가 청소노동자들에게 회의를 안내하며 드레스코드를 함께 공지했다. 사진=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제공.  
“회의 시간에 ‘멋진 옷’ 입고 와라” 드레스코드 지시
지난달 안전관리팀장이 새롭게 부임하면서 청소노동자 회의가 신설됐다. 매주 수요일 오후 3시30분에 진행했다. 안전관리팀장은 2차 회의부터 드레스코드를 공지했다. 남성 직원에게는 “정장 또는 남방에 멋진 구두를 신고 가장 멋진 모습으로 참석해달라”고 주문했다. 여성 직원에게는 “회의 자리에 맞게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참석해달라”고 이야기했다.

회의는 근무시간 중 진행됐다. 청소 업무를 하던 노동자 중 일부는 학교에서 지급한 근무복을 입고 지난달 9일 회의에 참석했다. 드레스코드를 따르지 않았다며 핀잔을 들어야 했다. 

한 청소노동자가 자신이 준비해갔던 원피스를 공개했다. 이 옷을 입은 노동자는 드레스코드에 맞지 않는다는 핀잔을 들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제공 
같은 달 16일 3차 회의가 열렸다. 일부 여성 노동자들은 지적을 피하기 위해 청소를 마친 후 옷을 갈아입었다. 집에서 준비해간 원피스를 차려입었다. 평가가 이어졌다. 노조는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고심 끝에 집에 있는 좋은 옷을 입고 참석했음에도 복장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고 밝혔다.     

기숙사 청소노동자는 지난 15일 국회의원과의 간담회에서 자신이 입은 티셔츠를 가리키며 “이 옷이 지저분한 옷이냐”면서 “깔끔한 옷을 입었는데 원하는 대로 입지 않았다고 감점을 줬다”고 호소했다. 고인도 동료들과 ‘최저임금밖에 못 받으면서 일하는데 (다음 달 월급에서) 정장 살 돈을 따로 빼둬야 하나 고민’이라고 이야기를 나눴던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 관계자는 SNS를 통해 “업무 회의 후 바로 퇴근하라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오라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가 풀어야 했던 시험지.  사진=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제공 
“건물 준공연도는?” “조직 명칭 한자로 쓰시오” 예고 없던 필기시험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은 지난달 9일 회의 시간 필기시험을 치렀다. 예고 없이 이뤄졌다. 기숙사의 개관연도와 각 건물의 준공연도 등이 출제됐다. 당시 시험을 치르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도 있다. ‘제1회 미화 업무 필기고사’ PPT 화면에는 “점수는 근무성적평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인사고과에 반영되지 않는 시험이었다는 학교 관계자의 주장과 상반된다. 
  
같은 달 16일에는 채점한 시험지를 나눠줬다. 노조 관계자는 “시험지에 점수를 적어서 줬다. 각자 몇 점을 받았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며 “(안전관리팀장이) 0점을 맞은 한 노동자에게는 ‘빵점 맞으셨다’며 시험지를 줬다고 했다”고 말했다. 창피함에 눈물을 보인 노동자도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2회차 시험도 치러졌다. 이번에는 속해 있는 조직의 명칭을 한자와 영어로 작성하라는 문제가 출제됐다.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을 한자·영어로 쓰라는 문제였다. 기숙사 수용인원을 묻기도 했다. 

동료 노동자는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갑작스러운 시험과 점수 공개에 당황스러웠고 자괴감을 느꼈다. 저희가 현장에서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토로했다.

학교 관계자는 SNS를 통해 기숙사 명칭 등을 한자·영어로 시험 보게 한 것에 대해 “기숙사를 처음 찾는 외국인들이 묻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응대를 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회까지만 시행하고 종료했다는 해명도 있었다. 그러나 노조는 “현장 노동자들은 시험을 없애겠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며 “사망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시험을 계속 시행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반박했다.  

서울대학교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이 학교의 갑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전문가 “누가 봐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

전문가들은 드레스코드와 필기시험 등이 직장 내 괴롭힘, 즉 갑질에 해당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업무상 불필요한 특정 복장 요구, 업무와 무관한 시험 실시 등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해당한다”며 “업무와 관련된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시험을 치르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이해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는 “사용자인 서울대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며 “‘악의’가 있어야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학교와 비공개 질의·응답을 마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 따르면 서울대는 갑질 논란에 대해 “‘선의’에 의해서 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김유경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도 직장 내 괴롭힘의 성립요건에 부합한다고 봤다. △업무상 적정 범위 △사회 통념상 상당성 등을 벗어난 일이라는 지적이다. 김 노무사는 “시험을 본다고 했을 때나 드레스코드를 지시했을 때 청소노동자들이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지위상 우위를 이용해 적정범위에서 벗어난 일을 시켰다”고 강조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지난 13일 입장문에서 “청소업무 시설관리직원이 사망한 데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객관적인 사실조사를 위해 인권센터에 조사를 의뢰했다. 조사 결과에 따라 미비한 부분이 발견되면 적극적으로 조치할 계획”이라고 이야기했다. 다만 유가족과 노조는 인권센터의 자체 조사가 아닌 노조·국회 등이 포함된 공동조사단 구성을 요구 중이다.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