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읽기] '리니지 라이크'가 헌사 아닌 조롱이 된 이유

기사승인 2021-07-23 06: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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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읽기] '리니지 라이크'가 헌사 아닌 조롱이 된 이유
사진=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쿠키뉴스] 강한결 기자 = ‘라이크’라는 단어가 붙는 게임장르가 있습니다. 우선 가장 유명한 것은 최초의 던전 탐색 RPG(역할수행게임) ‘로그’의 특징과 시스템을 모방해 만든 게임을 총칭하는 ’로그라이크’가 있죠. 여러 가지 특징이 있겠지만, 로그라이크 장르를 대표라는 특징은 바로 랜덤성과 영구적 죽음, 그리고 저장과 불러오기가 없다는 것이죠.

로그라이크처럼 널리 사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소울라이크’라는 장르도 있는데요. 일본의 게임 개발사 프롬 소프트웨어에서 선보였던 ‘데몬즈 소울’·‘다크소울’ 등 소울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통칭하는 장르입니다. 대표적으로 ‘세키로’, ‘인왕’ 등을 예로 들 수 있죠.

그런데 최근 한국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라이크’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게이머라면 ‘리니지 라이크’라는 단어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소울라이크, 로그라이크와 마찬가지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시리즈의 특징과 시스템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게임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게임읽기] '리니지 라이크'가 헌사 아닌 조롱이 된 이유
사진=신일숙 작가의 만화 '리니지'. 

리니지는 1998년 9월 유료 서비스를 시작으로 올해 출시 23년차를 맞이한 장수게임입니다. 한국 순정만화를 대표하는 신일숙 작가의 동명 만화를 기반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뛰어난 게임성으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엄청난 인기를 끌었죠. 당시 리니지는 대한민국 게임 산업의 전성시대를 태동시켰던 온라인 게임 시리즈였으며,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PC방 문화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 리니지를 즐겼다는 기자의 지인은 "당시 PC방을 가면 대략 세 부류가 있었는데, 크게 '디아블로2'·'스타크래프트'·'리니지'파가 있었다"며 "나 같은 경우는 당시 리니지를 같이 하던 혈맹원과 지금도 연락한다"고 말했습니다.

리니지는 IP(지식재산권)으로서도 엄청난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현재도 리니지 IP는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데요. 해당 IP 기반 게임은 PC와 모바일을 통틀어 5종입니다. 여기에 '리니지 클래식'과 '프로젝트 TL'이라 불렸던 '더 리니지'도 개발중입니다.

흥행력 또한 막강합니다. '리니지M'·'리니지2M'은 모바일 시장을 평정한 작품입니다. 두 작품은은 2017년 6월 23일부터 이달 초까지 번갈아 구글 플레이스토어 최다 매출 1위를 지켜왔는데요. 현재는 카카오게임즈의 ‘오딘: 발할라 라이징’에 왕좌를 내주긴 했지만, 리니지 형제가 세운 기록은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리니지 IP를 활용해 넷마블에서 제작한 ‘리니지2 레볼루션’과 PC게임 ‘리니지’·‘리니지2’도 여전히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다양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리니지는 한국 게임산업 전반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2000년 중반 이후 출시된 한국 MMORPG는 리니지의 시스템을 계승했습니다. 길드 콘텐츠 기반의 대규모 세력전 및 공성전, 몬스터 디자인 등 리니지 시리즈가 소위 ‘한국형 MMORPG’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1세대 온라인 게임인 리니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웰메이드 IP라는 뜻"이라며 "'바츠 해방전쟁'과 같은 사건은 단순히 게임을 넘어 대중문화 전반에도 영감을 전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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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바츠 해방전쟁을 기념해 2011년 엔씨소프트에서 선보인 아트컷.

'바츠 해방전쟁'은 리니지2 바츠 서버에서 2004년 6월부터 2007년까지 약 4년간 20만명 이상의 유저가 참여한 온라인 게임 내 전쟁입니다. 당시 바츠 서버의 있던 대형 세력 'DK 길드'는 사냥터 통제와 높은 세금을 부가하는 행위로 유저들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에 당시 아무 관계도 없는 유저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대형 권력에 대항한 것이 바로 바츠 해방전쟁입니다.

바츠 해방전쟁은 ‘온라인게임의 사회성정치성'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아울러 논문, 서적, 웹툰, 예술작품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재생산되기도 했습니다.

리니지는 분명 한국 게임사에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리니지 라이크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것처럼, 리니지가 한국 게임산업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도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리니지 라이크 게임의 특징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리니지 시리즈의 특징을 알아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이 게임의 핵심은 전투 기반의 경쟁입니다. 내가 더 강해져야 상대방을 이기고 위로 올라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용자 간 전투인 PK(플레이어 킬링, player Killing)도 필수요소죠. 강한 이용자들은 각자의 세력을 구축해 사냥터 필드에 등장하는 보스를 통제하기도 하고, 공성전을 통해 마을과 서버를 장악하기도 합니다.

강력한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캐릭터를 성장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냥과 육성만으로는 경쟁력을 가지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 과정에서 '페이 투 윈(Pay to Win)'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이용자는 아이템 강화를 위해 현실재화를 투자하고, 결국 돈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 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죠.

리니지를 즐겨하지 않는 대다수의 게이머는 '리니지 라이크'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활한 게임 플레이를 위해서 현실 재화를 반강제적으로 투자해야 하고, 액수 자체도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죠. 이러한 과정이 없으면 온전히 게임 콘텐츠를 할 수 없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무·소과금 유저는 콘텐츠 진행을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헤비 과금 유저는 노력과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게임읽기] '리니지 라이크'가 헌사 아닌 조롱이 된 이유
사진='트릭스터M'.


지난 상반기 출시된 주요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리니지'와 관련된 별명이 붙었다는 것인데요. '트릭스터M'은 '귀여운 리니지', '제2의 나라'는 '지브리니지', '오딘'은 '북유럽 리니지'로 불렸습니다. 여기에는 조롱조의 의미가 붙어있습니다. 세 작품은 출시 전부터 리니지식 비즈니스 모델(BM)을 그대로 차용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스킨만 다르게 적용했지, 본질은 리니지’라는 강렬한 비판도 받았습니다. 그나마 제2의 나라와 오딘은 어느정도 논란이 해소됐지만, 트릭스터M은 지금까지도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트릭스터M은 리니지의 BM을 거의 완벽하게 차용한 작품입니다. 원작에 없었던 PK 시스템이 추가됐고, 필드 보스 등이 추가되면서 일부 핵과금 유저들이 서로 손잡고 사냥터를 통제하기도 했죠. 반면 '드릴 시스템' 등 원작의 핵심 소재의 중요성은 감소했죠. 과거 PC 원작을 즐겼던 2030 이용자들은 "트릭스터 만의 색깔이 사라졌다"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결국 다수의 2030 무·소과금 이용자는 실망감으로 게임을 그만뒀고, 신규유입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되니 대규모 과금의 이른바 '고래유저'도 이용자도 난처한 상황을 맞게 됐고, 게임 자체도 하향세를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제는 '리니지'의 의미가 주홍글씨처럼 여겨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리니지에 대한 거부감이 이렇게 커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부분은 과금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즉 한국형 MMORPG를 반드시 현실 재화 투입이 필요한 장르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대다수 국내 MMORPG에는 대형 길드의 사냥터 통제가 존재합니다. 대형 길드에 들기 위해서는 캐릭터가 강해야 합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이 과정을 단축하는 것이 바로 과금입니다. 물론 합리적인 수준의 과금은 BM으로서 큰 문제는 없습니다만, 최근에는 무·소과금 유저는 온전히 게임을 진행하기 어려운 BM을 차용하는 게임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전까지는 이기기 위해 돈을 썼다면 지금은 플레이를 위해서 과금이 당연시되는 '페이 투 플레이(Pay to Play)' 양상까지 벌어지고 있다"며 "'리니지'를 즐겼던 세대는 이러한 구조가 익숙할 친숙할 수 있지만, 트릭스터M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험 지금의 2030 게이머는 리니지식 BM을 불합리한 시스템으로 인식한다"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물론 엔씨 입장에서 제2의 나라와 오딘 등 자사와 연관 없는 게임이 리니지와 엮이는 게 억울할 수 있습니다만, 자사의 자부심이자 대표 IP인 리니지가 왜 이렇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전락한 부분에 대해서는 심사숙고가 필요해보입니다.

현재 오딘은 리니지 형제를 제치고 2주 이상 최다 매출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하면 오딘은 분명히 매력적인 게임입니다. 하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오딘이 리니지의 부진으로 반사이익을 받은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물론 오딘이 잘 만들어진 게임인 것은 확실하다”면서도 “다만 리니지 시리즈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오딘의 순위가 올라간 점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올해 초반 이른바 ‘문양 사태’ 등 여러 가지 부정 이슈로 일정 수의 리니지M·2M 이용자가 이탈했는데 이들 가운데 ‘핵과금 유저’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며 "이들이 오딘으로 넘어갔기에 매출 순위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게임읽기] '리니지 라이크'가 헌사 아닌 조롱이 된 이유
사진='블레이드&소울2'. 

다음달 엔씨는 자사의 대표작 '블레이드&소울(블소)'의 후속작 '블소2'를 출시합니다. 블소2는 올해 최고의 기대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다만 '더이상 엔씨 게임은 기대가 안 된다', '결국은 무협 리니지 아니냐"는 등의 비판도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블소를 재밌게 즐긴 한 명의 게이머로서 기자는 블소2가 엔씨를 대표하는 명작 반열에 오르길 희망합니다. 특히 과금 이슈로 비판받는 게임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리니지 라이크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배경에는 국내 게임업계 전반의 책임도 일정부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내에서 출시된 MMORPG의 대부분이 리니지와 매우 유사한 형태를 띄고 있는데요, 소위 양산형 MMORPG가 쏟아지면서 이들의 원류인 리니지에 대한 불신도 커진 셈이죠. 앞으로 출시되는 MMORPG는 이러한 기류에서 벗어난 신선함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sh04khk@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