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래퍼3’ 이후…권영훈의 시간 [쿠키인터뷰]

이은호 / 기사승인 : 2021-08-04 06: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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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너바나’를 낸 가수 권영훈.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래퍼 더콰이엇은 이 사람을 보며 “심상치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키드밀리는 이 사람의 무대가 “신의 탑 꼭대기에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내로라하는 음악인들에게 극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힙합 시장에 발을 들인 그의 이름은 권영훈. Mnet ‘고등래퍼3’ 출연과 동시에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던 그는 어쩐 일인지 이듬해 11월 돌연 ‘음악을 접겠다’고 선언했다.

“살아야겠다 싶었어요. 음악 때문에 힘든 일이 너무 많았거든요.” 최근 서울 합정동 푸이(phooey) 사무실에서 만난 권영훈은 지난 2년을 “자학과 자격지심이 나를 옭아맸던 시간”이라고 돌아봤다. 그는 술에 빠져 스무 살을 보냈다. 자신보다 음악이 우선인 삶이 버거웠다. 이루고 싶은 것도 더는 없었다. 몇 달이 지나도 권영훈은 방황을 멈추지 못했다.

권영훈이 지난달 21일 내놓은 신곡 ‘너바나’(Nirvana)는 그가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결심으로 만든 노래다. 그는 “유작을 남긴다면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자신이 왜 괴로운지, 사람들은 왜 괴로워하는지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 끝에 얻은 답이 ‘열반’(너바나)이었다. 권영훈은 불교를 비롯한 종교와 심리학, 철학, 심지어 생물학까지 파고들며 이 곡을 만들었다.

“뭘 믿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지평선을 떠올렸어요. 지평선은 실제로 존재하진 않지만, 어쨌든 아름답잖아요. 그 때 진리를 다 깨닫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아름다운 뭔가를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를 받았거든요.”

가수 권영훈.
‘고등래퍼3’에서 거친 목소리로 랩을 하던 권영훈은 신곡 ‘너바나’에서 느긋한 리듬에 기대 여유롭게 노래한다. 그에게 장르는 자신 안의 이야기를 담는 그릇일 뿐, 팝이냐 힙합이냐 하는 구분은 무의미했다. 권영훈은 “내가 가진 메시지를 쉽고 명료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너바나’는 2000년대 중반 유행하던 가요를 참고해 사운드를 만들었다. 주제가 무거운 만큼, 친숙한 음악으로 전달력을 높이려는 전략이었다. ‘고등래퍼3’ 지원 영상에 함께 출연했던 음악 친구 문민이 이 곡을 편곡했고, 권시우 작가가 음반 표지를 그려줬다.

긴 방황을 끝내고 다시 음악을 시작한 지 이제 1년여. 권영훈은 “앞으로도 음악을 계속 만들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먼 미래에 벌어질 일을 계획하기보다, 내일 아침 뜨는 해를 두려움 없이 맞이할 수 있기만을 바란다고 했다. 다만 당분간은 ‘음악인 권영훈’을 꾸준히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는 자신의 신곡 외에도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곡을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땐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가졌다. 삶이 고달플 땐, ‘진도그’라고 이름 붙인 상상 속 세계로 도피하기도 했다. 지금은 다르다. 자신과 연결된 현실을, 자신과 닿아 있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권영훈은 자신을 “인간다운 인간”으로 정의했다. “어느 날은 뭔가를 깨닫고 다른 이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또 다른 어느 날은 아프고 괴로워하고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는 평범한 인간 말이다.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게 행복할 때도 물론 있어요. 하지만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뭔가가 돌아오지 않아도 돼요. 누가 듣고 있는지는 몰라도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닿았겠지’라는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고 있어요.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푸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