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청년기자단] '쇼미더머니' 이면의 한국 힙합…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기사승인 2021-10-02 0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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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조수근 객원기자 =매년 여름이 되면 한국의 음원 차트가 들썩거린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유명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때문이다. 경연을 통해 발매된 노래들은 일시적으로 음원 차트를 점령하고, 힙합에 관심 있는 청년 세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쇼미더머니가 상업적 성공을 거둠에 따라 한국에서 힙합의 입지도 넓어져 왔다. 덩달아 직접 힙합 음악 시장에 뛰어드는 청년들도 많아졌다. 이들은 주로 두 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콘덴서 마이크,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같은 전문적 장비로 랩을 녹음하고 발매한다. 물론 상업적인 성공은 쉽지 않다. 꾸준히 자신의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저변에서 묵묵히 자신의 음악을 해 나가는 수많은 무명 래퍼들을 우리는 ‘언더그라운드 래퍼’ 라고 부른다.

홍보와 기획을 도맡아 주는 연예기획사와 달리,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은 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야만 한다. 유일하다시피 한 성공의 창구는 ‘쇼미더머니’ 프로그램이다. 많은 래퍼가 홍보를 목적으로 해당 프로그램에 참가 신청을 한다. 경연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TV화면에 잠깐이라도 노출이 되면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촬영진의 눈에 띄기 위해 독특한 ‘컨셉’을 준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쇼미더머니 프로그램의 경쟁률이 해가 바뀔수록 더욱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방영된 쇼미더머니 시즌 9의 경우 무려 2만 3000여 명의 지원자 수를 기록했는데, 이들 중 1차 예선을 통과한 래퍼는 122명에 불과했다. 수치로 환산하면 총지원자의 0.53%만이 2차 예선에 진출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쿠키청년기자단] '쇼미더머니' 이면의 한국 힙합…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20년 이상 힙합 씬에서 활동해 온 래퍼 SAMA-D의 공연 모습. 그는 어릴적 친구의 mp3플레이어에서 처음으로 힙합 음악을 접했다.   SAMA-D 제공

포화된 경쟁 속에서 힙합 시장에 뛰어든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은 직장인, 대학생, 비-대학생 등의 카테고리를 넘나드는 다양한 사회적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어째서 이토록 과열된 시장에 뛰어든 것일까? 힙합을 하는 다양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보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있는 세 명의 음악인을 만나 인터뷰를 가져 보았다. 

SAMA-D(이하 M)는 20년 넘도록 힙합 씬에서 활동해 온 래퍼다. 힙합 문화를 초창기부터 지켜봐 온 베테랑인 셈이다. 또 한 명은 Swadi (이하 S)다. 그는 현재 대학 공부와 음악을 병행하며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N‘jerky (이하 N) 은 늦은 나이에 음악을 시작해 서울로 상경하여 최근에는 유명 브랜드 MCM와 함께 음악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들 세 명의 언더그라운드 래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청년 세대들이 힙합 시장에 뛰어든 이유를 직접 들어 보았다.    

랩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M: 친구 mp3로 처음 힙합 음악을 듣고 이런 음악도 있구나, 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힙합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랩을 한다는 형을 만났는데, 그 형에게 랩을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가르쳐 줬었다. 목동에서 강동역까지, 지하철 끝에서 끝까지 매일 가서 연습했다. 그러다 동료 래퍼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지금까지 랩을 하고 있다. 현재는 직장을 다니면서 음악을 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랩을 하는 사람이 흔하지 않았다. 동시에 힙합 음악에 대한 정보도 지금처럼 흔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서 지금보다는 진입장벽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게 좀 더 높았던 거 같다. 지금은 워낙 유튜브가 커져서, 힙합에 대한 정보를 얻기 쉬워진 것 같다. 어디에서나 전 세계의 힙합 음악을 접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랩을 한다는 사람들도 많아진 것 같다.

S: 초등학교 때 제일 친한 친구가 외국 힙합을 들려줬었는데, 아마 에미넴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힙합을 듣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우리끼리 듣는 음악, 또래 문화라는 생각이 있었던 거 같다. 어릴 때는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랩하고, 프리스타일 하고, 그랬었다. 머리가 좀 크고 나서는 대학 안 가고 음악 하겠다, 라고 부모님에게 선언했는데 부모님이 너무 속상해 하시는 거지. 이게 아닌가, 싶어서 결국 대학에 가서 힙합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랩을 시작했다. 대학과 음악을 병행하는데 의외로 장점이 많더라. 경영학을 전공하는데, 내가 배운 마케팅 기술들을 음악 유통에 적용해 볼 수도 있고. 반대로 음악을 하며 얻은 지식들을 마케팅 이론에 접목할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현재는 월세로 녹음실을 따로 두고 녹음을 하고 있다. 

N: 처음 힙합 음악을 들은 건 중학교 2학년 때다. 당시 주변 환경이 좋지 않았다. 부모님은 이혼하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또 워낙 시골이라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가면 선생님들이 많이 때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때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때 힙합 음악의 반항적이고 직설적인 가사랄까, 그런 것들이 많이 공감이 됐던 거 같다 그때 친누나가 반 장난으로, 너는 랩을 좋아하니까 쇼미더머니 한번 나가보는 게 어때, 라고 했던 게 계기가 되었다. 그때가 스물네 살 때. 삶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열여섯 마디 가사를 써서 쇼미더머니에 나갔고 1차 합격을 했다. 그때 내가 쓴 가사를 제대로 된 곡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쇼미더머니에 나가 본 적 있나?

M: 두 세번 나갔던 적이 있다. 2차에서 떨어졌다.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이라, 카메라 앞에서 중압감을 이겨내기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내 캐릭터가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프로그램에서 원하는 상이랄까, 그런 이미지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내가 거기에 부합하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고. 물론 결정적으로 내 실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S: 한번 나간 적 있다. 쇼미더머니 예선이 토요일 낮이었다. 토요일 낮에 심사를 받으려면 새벽 다섯시, 여섯시부터 줄을 서 있어야 했다. 지원 당일에 새벽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심사장으로 가서 기다렸다. 도착해서도 거의 열두 시간 정도 대기하고 십 초 정도 심사를 봤던 거 같다. 떨어지고 나서, 집에 와서 쓰러지듯 잠들고 다시 일어나서 아르바이트하러 편의점에 갔던 기억이 있다.

과포화된 시장에서 래퍼들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M: 예전에는 음악을 잘하면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컸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음악뿐만 아니라 보여주는 것들이 중요한 시대가 되지 않았나. 예를 들면 옷차림과 같은 외모적인 것들이나 그 사람이 말하는 말투나 행동 같은 것들. 그런 캐릭터성이 음악과 잘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략이랄까, 계산을 잘 해야 해서 단순히 음악만 좋다고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거 같다. 그리고 유행의 주기도 짧아지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도 빨리 바뀌면서 고민이 많아지는 것 같다.

S: 흔히들 이야기하는 것, 나는 열심히 하는데 왜 잘 안 될까. 이 말은 성립하기 어려운 것 같다. 성공하지 못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 마케팅을 잘못했다거나.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지 못했다거나. 실력도 좋아야 하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브랜딩이 필요하달까. 래퍼들의 소비 주기도 빨라진 것 같다. 사실 데뷔 2년차면 신인인데, 힙합씬 내에서는 2년이면 좀 오래된 래퍼, 라는 인식이 있다. 히트곡 하나 내고 활동을 잘 하지 하는 사람들도 있고.

M: 맞다. 유행이 너무 빨리 바뀌고 그만큼 래퍼들의 소비주기도 빨라진다. 갑작스러운 성공을 맞이한 래퍼들의 이후 행보를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당연히 래퍼 본인의 입장에서도 고민은 많을 것이다. 신예 시절 히트곡을 내고 많은 돈을 벌게 되니, 다음 작업물을 내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또 동기부여가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쿠키청년기자단] '쇼미더머니' 이면의 한국 힙합…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힙합 음악을 만드는 작업실.   조수근 객원기자

현재의 힙합 씬에 아쉬운 점이 있나?

M: 예전에는 작은 힙합 공연들이 있었다. 신촌의  마스터플랜(현 Geek)이나, 홍대의 캐치라이트 같은 곳에서도 공연을 했다. 이제는 너무 극단적으로 쇼미에 시선이 쏠려서 그런지 작은 공연들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서 아쉽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싶으면 직접 공연을 보러 왔다. 요즘처럼 뮤직비디오나 영상으로 음악을 접하는 게 아니니까, 소규모 공연장에서 래퍼들과 직접 만나 소통하며 공연을 즐겼다. 물론 장단은 있다. 그때는 한국 힙합 자체의 파이가 비교적 작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어쨌거나 소규모 공연들과 같은 문화들이 유지되어야 한국 힙합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쇼미더머니에서 볼 수 없는 래퍼들을 그런 소규모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 입장에서도 재밌지 않을까.

S: 래퍼들에게 쇼미더머니 말고도 다른 기회들이 많이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쇼미더머니가 힙합으로 성공하는, 그런 길을 많이 넓히기도 했지만 오히려 좁히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쇼미더머니는 쇼미더머니의 방식으로 힙합을 본다. 물론 절대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좀 다른 관점에서 힙합을 보는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또 신예 아티스트들이 발굴되면 힙합 문화가 근본적으로 좀 더 탄탄해지지 않을까.

N: 현재 랩을 하는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쇼미더머니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성 래퍼들이 신예 래퍼들을 발굴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는 힙합플레이야 같은 힙합 커뮤니티에서 기성의 래퍼들이 자체적으로 대회를 많이 열었다. 상금이 적더라도 그만큼 기회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쇼미더머니가 유일한 길이 되면서 래퍼들도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고, 과하게 자극적인 방식으로 상업화가 되고 있지 않나. 

대중들의 시선이 쇼미더머니에만 쏠리면서 생기는 폐혜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M: 뭐랄까, 한국 힙합씬보다 쇼미더머니가 더 커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낀다.   

S: 이제 곧 쇼미더머니 시즌이 시작되고 음원이 발매되면 힙합을 듣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몰린다. 앨범 발매를 몇 달 앞두고 있는데, 사실 쇼미더머니 시즌과 맞물리니까 고민도 많이 된다. 앨범을 내도 주목받기 힘들 테니까.  

음악을 하며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나?

M: 최근에는 힙합이 나 자신을 온전히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하면서, 조언이나 의견도 많이 들었지만 반대로 온전히 내 것을 찾지 못한 상태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사람처럼 하는 게 유행이니까, 다들 이렇게 하니까 억지로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요즘에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려는 욕심보다는 나답게 하려고 한다. 그런 게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또 내가 스스로 즐기면서 음악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즐거워야 듣는 사람도 즐겁지 않겠나. 

S: 어릴 때는 돈, 명예, 이런 걸 원했는데 쇼미더머니 지원 이후부터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유명세를 한 번에 타기보다는 꾸준히 하다 보면, 나를 발전시키다 보면 누군가는 들어주겠지, 하는 식으로, 지금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내가 의도한 바대로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다.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내가 느끼는 사회를 이야기하는 식이다. 물론 많이 들으면 좋지만. 만약에 돈을 못 번다 하더라도 계속 친구들이랑 작업하면서 살 거 같다. 과거 부모님 세대 때는 포크나 락 음악이 유행했다. 아직도 많은 중장년층이 취미로 기타를 치고 또 공연도 하지 않나. 그런 식으로, 내게 힙합은 평생 즐기는 것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N: 가치를 추구한다기보다는, 내가 해야 하는 이야기를 가사에 적고 싶다. 지금 내가 생각하기에 옳다고 여겨지는 이야기들이다.  또 옳은 예술은 없겠지만, 올바름에 대한 고찰은 항상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항상 정답은 아니니까. 그런 과정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안의 것들을 가사에 담아야 래퍼가 아닐까. 어떻게 보면 나는 대화의 수단으로서 랩 음악을 고른 셈이다. 힙합을 살고 있는 나를 힙합 음악을 통해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힙합은 현재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장르다.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힙합 음악을 생산하는 젊은 래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분명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청년들이 힙합 음악 시장에 뛰어든 이유를 알아야 한다. 물론 이들이 모두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는 없겠지만, 청년들의 목소리가 힙합이라는 양식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쇼미더머니가 보여주는 자극적인 장면들로 인해 힙합 장르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쇼미더머니가 아니더라도 힙합을 삶의 한 양식으로 택한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있다. 이들은 미디어 속 래퍼들의 화려한 모습을 동경하기보다는, 힙합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고자 가사를 쓰고 녹음을 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가사에는 대한민국의 청년 세대들의 화두가 녹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은 한 번쯤 이런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의 음악을 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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