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 사회] 미국인 J씨(41)는 지난달 11일 오전 1시쯤 서울 역삼동 노보텔호텔 앞에서 자신의 회사에 투자한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다 얼굴을 두 차례 때려 강남경찰서에 입건됐다. 한국인 피해자는 조사를 마치고 오전 2시쯤 귀가했으나 J씨는 조사를 받을 수 없었다. 영어를 할 수 있는 경찰관이 없어 통역사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경찰이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통역사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경찰은 오전 9시가 되어서야 통역사와 연락할 수 있었다. 결국 J씨는 입건 10시간이 지난 오전 11시에야 조사를 받을 수 있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피의자나 피해자 입장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 하지만 통역서비스가 형편 없어 몇 시간씩 허비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서울지방경찰청에 등록된 민간인 통역사는 30개 언어 308명. 경찰 관계자는 22일 “외국어 사용이 가능한 경찰을 포함해 통역사 467명이 상시 대기하고 있다”며 “모집할 때 통역가능 시간대도 조사했으므로 새벽에 못 오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통역사가 전화를 받지 않거나 통역을 거부할 경우 경찰은 손을 놓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경찰은 일단 사건이 터지면 외국인이 사용하는 언어를 파악해 해당 지방경찰청에서 배포한 책자를 보고 경찰서 가까이에 사는 통역사부터 연락을 취한다. 해당 통역사가 전화를 받아 의뢰에 응하면 곧바로 조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루한 전화돌리기만 계속할 뿐이다.
영어, 중국어 등 주요 언어 통역사만 많은 것도 문제다. 서울청에 소속된 통역사 중 주요 5개 언어 통역사는 360명(77%)에 달한다. 이주노동자, 소수 언어 사용자의 불편함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다.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김미연 팀장은 “사건이 나면 이주노동자 단체에서 어렵게 수소문해 통역사를 데려가지만 역부족”이라며 “외국인 편의를 위해 정부와 경찰이 통역서비스를 원활히 제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선 경찰관의 고충도 상당했다. 김모(33) 형사는 “일단 통역요원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며 “그동안 인적사항 정도만 확인한다”고 말했다. 최모(40) 형사 역시 “외국인이 피해자인 경우에도 통역이 없으면 경찰서에 있게 할 수 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통역사들도 볼멘소리를 내긴 마찬가지다. 통역사 김모(39)씨는 “보통 다른 일을 하면서 통역을 하는데 힘든 몸을 이끌고 시간당 3만원을 위해 새벽에 나가기는 어렵다”며 “경찰서 별로 각 언어당 통역사를 확정해 책임지게 하고 통역사 처우에도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국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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