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대통령은 55년간의 정치인 생활 대부분을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 구현을 위해 쏟았고, 미얀마 아웅산 수치 여사 석방운동 등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서도 헌신했다. 그는 2000년에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으며, 국제사회는 그의 이런 공헌을 기려 같은 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그의 서거 소식에 국내 뿐 아니라 그를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로 불렀던 국제사회도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박창일 연세의료원장은 병원 브리핑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 전 대통령이 오늘 오후 1시43분 서거하셨다”고 발표했다. 박 원장은 “7월13일 폐렴으로 입원하셨지만 마지막에는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인해서 심장이 멎으셨고 급성호흡곤란 증후군과 폐색전증 등을 이겨내지 못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심폐소생술을 했느냐는 질문에는 “생명을 더 연장할 가능성이 있을 때 시도를 하지만 고령이신데다 다발성 장기손상으로 인해 더 견뎌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해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회견에 앞서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알리며 이희호 여사와 홍일 홍업 홍걸 3형제 및 손자 손녀가 임종을 지켰으며 권노갑 한화갑 한광옥 등 원로 정치인들도 함께 있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고령인데다 오랜 신장 투석 치료로 몸이 쇠약해진 상태인데다, 지난달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청와대와 여야 정당은 깊은 애도를 표시했으며, CNN과 AP통신 등 전 세계 주요 언론들도 긴급 속보로 소식을 전했다.
김 전 대통령 장례는 정부와 유족간 아직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유족의 반대가 없는 한 국민장을 치르게 될 전망이다.
1924년 1월 전남 무안군 하의면에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54년 목포에서 3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정계에 진출했다. 이후 6선 의원을 지냈다. 73년 8월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됐다 극적으로 풀려나 세계의 이목을 받았다. 이후 80년 7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는 등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으나 97년 4수 끝에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 재임 때인 2000년 6월 13∼15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대로 평양을 방문하여 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퇴임 이후에는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지내면서 국제 평화를 위해 헌신해왔다. 손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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