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 선교구역에서 읽는 북한 시장경제의 민낯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평양시 선교구역에서 읽는 북한 시장경제의 민낯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기사승인 2025-06-13 14:49:50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대동강의 잔잔한 물결이 평양의 심장부를 감싸안는 그곳. 선교구역은 북한이 내세우는 산업, 교육, 물류의 중심지로 손꼽힌다. 한때 ‘배다리’라 불렸던 이 지역은, 대동강을 건너던 작은 나룻배의 기억을 품은 채 오늘날 거대한 도시 공간의 하나로 성장했다.

이곳에는 김철주사범대학,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등 북한을 대표하는 교육기관과 북한 유일의 성당인 장충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연운회사, 평양방직공장, 선교식료공장 등 대형 산업시설이 밀집해 있어, 선교구역은 명실상부한 평양의 산업·물류 허브로 기능한다. 이러한 기반 위에, 북한 당국은 ‘공원 속의 도시’를 표방하며 녹지와 공원을 조성하고, 대동강 변의 자연환경을 도시 이미지에 녹여내고 있다.

하지만 선교구역의 진짜 얼굴은 화려한 도시계획과 상징적 시설 뒤편, 골목과 시장 그리고 주민들의 일상에서 드러난다. 평양 중심 도시권에 속하지만, 선교구역은 평양에서 가장 가난한 구역 중 하나로 꼽힌다. 허름한 단층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연탄과 가축 분뇨 냄새가 뒤섞인 거리, 불안정한 전기와 수도, 그리고 새벽과 저녁마다 단속을 피해 열리는 비공식 시장은 북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극심한 빈곤, 그리고 시장경제의 거친 파고가 교차하는 생존의 현장이다.

선교구역의 도시 구조와 역사, 주요 시설과 산업, 그리고 그곳에서 펼쳐지는 시장경제와 주민들의 생존 투쟁을 통해, 북한 사회의 민낯과 변화의 가능성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 겉으로는 ‘사회주의 번영’의 상징이지만, 그 이면에는 체제의 한계와 절박한 삶 그리고 변화의 씨앗이 공존하는 선교구역—이곳의 골목마다 스며든 고통과 희망, 그리고 북한 사회의 내일을 가늠할 작은 움직임을 함께 읽어본다.

1. 평양시 선교구역의 주요시설과 랜드마크

선교구역은 평양시의 중심 구역 중 하나다. 대동강 동안에 위치하며 남쪽은 락랑구역, 북쪽은 동대원구역, 동쪽은 력포구역 및 사동구역과 접해 있다. 행정구역상 21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선교동, 남신동, 장충동, 률곡동, 대흥동, 영제동, 등메동, 무진동, 강안동, 산업동 등이 있다. 선교구역은 대동강을 끼고 있어 수변을 따라 주요 도로와 주거, 공공시설이 배치되어 있고 산업동 등 일부 지역에는 공장과 기업이 분포한다.

평양시는 ‘공원 속의 아름다운 도시’를 목표로 도시계획이 이루어져, 선교구역 역시 녹지와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도시계획의 특징으로 넓은 공원과 녹지 공간이 확보되어 있으며, 대동강 변을 따라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이 많다. 평양 전체의 1인당 공원 면적은 40㎡ 이상으로, OECD 도시 평균의 약 2배에 달해 쾌적한 도시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대기질 개선을 위해 공원과 녹지들을 연결하는 녹지축이 형성되어 있고, 대동강 변의 자연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형직사범대학 : 평양시 선교구역에 있는 국립 사범대학으로, 북한의 교원 및 교육 관료를 양성하는 중심적인 교육기관이다. 김형직사범대학은 다양한 학부를 운영하며, 정치사상 과목과 전문 교과를 강조한다. 교육학부, 어문학부, 외국어문학부, 역사학부, 지리학부, 수학학부, 생물학부, 화학학부 등이 있다. 조선 유일의 교육학부를 보유하며, 김일성혁명력사와 주체철학 등 정치사상 과목을 필수로 포함하고 있다. 이 대학은 지방 사범대학 및 교원대학의 교원과 대학교원을 양성하며, 전국적으로 교원 배치와 모집을 계획적으로 수행한다. 또한 생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명문으로 자리 잡고 있다.

▶김철주사범대학 : 평양시 선교구역에 있는 북한의 대표적인 교원 양성 대학이다. 이 대학은 1946년 설립된 평양교원대학을 모체로 하며, 중등교원 양성을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1990년 김일성의 동생 김철주의 이름을 따 김철주사범대학으로 명칭 변경하였다. 중학교 교원을 양성한다. 교육학, 역사지리학, 국어문학, 외국어, 물리학, 생물학 등 다양한 학부를 운영한다.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 선교구역에 있는 고등교육기관으로, 경공업 분야의 전문가와 과학자를 양성하는 데 중점을 두는 대학이다. 1959년 김책공업종합대학 섬유공학부와 함흥화학공업대학 식료공학부를 통합하여 설립되었다. 1996년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이 대학은 식료공학, 방직공학, 일용화학공학, 종이학, 기계공학 등 다양한 학부로 구성되어 있다. 주체적 세계관과 실천 능력을 갖춘 공학 기술자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근에는 연구형 대학으로 전환하며 첨단기술 제품 개발 및 경공업 공장의 현대화를 지원하는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평양외과대학 : 평양시 선교구역에 있는 의과대학이다. 이 대학은 1985년 6월 평양고등의학전문학교로 설립되었으며, 외과의사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이후 1990년 평양의사재교육대학과 통합되었다가, 1992년 다시 분리되어 현재의 평양외과대학으로 개편됐다. 김만유병원을 비롯한 평양시 내 여러 인민병원 및 전문과병원이 임상실습 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연운수송회사 : 선교구역에 있는 북한 대외경제성 산하 유통회사로서 북한 물류의 약 50~60%를 담당하는 대규모 운송회사이다. 이 회사는 약 700~800대의 트럭을 보유하고 있다. 평양 본사에 500대, 신의주 지사에 100대 등 전국적으로 지사를 운영하며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운송하는 물량을 살펴보면 약 80%는 개인 돈주(북한 내 시장경제 주체)의 상품이며, 나머지 20%는 무역회사 물품으로 구성된다. 연운회사는 북한 경제 활동 전반에 걸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폐쇄적인 계획경제 속에서도 시장경제 요소를 받아들이는 사례로 평가된다.


▶산업시설 : 북한 최고의 평양방직공장이 위치해 있다. 봉제공장으로는 대규모 5개, 중규모 20개, 소규모 공장은 개인이 운영하는 공장으로 200개가 있다. 평양곡산공장은 옥수수를 주원료로 한 곡물 가공 및 식품 생산을 하며, 선교김치공장은 다양한 김치류와 장절임 제품 생산한다. 선교식료공장은 빵류, 당과류 등 식료품 생산하고 있다. 평양고무공장은 고무제품 생산을 담당하며, 평양제약공장은 다양한 의약품을 생산한다. 평양연탄공장은 연탄을 생산하는데 주변의 개인들도 가정에서도 연탄을 생산하여 공급하고 있다.

▶상업시설 : 식당으로는 선교각 등 대형 식당이 위치해 있으며, 평양의 대표적인 외식·상업시설 중 하나로 꼽힌다. 그 외에 공동 이용시설로 목욕탕, 세탁소, 밥공장 등도 구역 내에 마련되어 있다. 선교구역은 평양 내 인구가 많은 지역 중 하나로, 상업시설의 종류와 규모가 비교적 다양하다. 구역 내 시장, 상점, 식당 등은 지역 주민의 일상 소비와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식량과 생활필수품은 선교 시장과 약 45개의 골목 시장, 55개의 상점, 450개의 매점에서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평양곡산공장 : 최근 평양곡산공장은 국산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2021년 보도에 따르면, 강냉이(옥수수)가공공정, 물엿생산공정, 옥당생산공정, 과자생산공정, 사탕생산공정 등 모든 생산공정의 자동화, 흐름선화, 무균화, 무진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했다. 설비의 국산화 비중은 95% 이상을 보장하고 있으며, 원료투입부터 제품 포장에 이르는 모든 생산공정에 북한이 설계하고 만든 첨단설비들을 배치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이 공장을 방문하여 “평양곡산공장은 주체화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가는 본보기공장, 자력자강의 창조대전에서 표준으로 내세울 만한 공장, 현대화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교과서적인 공장”이라고 평가했다. 2025년 현재, 평양곡산공장은 북한에서 사탕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대표적인 공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평양방직공장 : 선교구역에 있는 북한 최초의 방직공장으로, 1950년 4월에 조업을 시작했다. 이 공장은 방적, 직포, 염색, 편직 등 다양한 공정을 갖춘 종합 방직공장으로 발전했으며, 전후 복구와 확장을 통해 현대화됐다. 1970년대에는 평양견방직공장을 통합하고 자동화된 화학섬유 방적 공정을 도입하면서 규모를 확장했다. 또한 만경대직물분공장, 서성타월분공장 등도 통합하여 기능을 다양화했다. 2011년에는 ‘김정숙평양방직공장’으로 개칭했으며, 현재도 북한 방직산업의 중심지로 운영되고 있다.

▶평양연탄공장 : 평양연탄공장은 북한의 대표적인 연료 생산시설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개인 공장도 등장해 평양에 연탄을 공급하고 있다. 연탄은 북한 주민들의 겨울 난방과 취사에 필수적인 연료이다. 최근에는 소형 구멍탄과 3단 소형 구멍탄통 등 다양한 연탄 제품과 연료도구가 개발·보급되고 있다. 평양연탄공장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연탄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2. 평양시 선교구역 시장경제 활동 분석 

북한 평양의 선교구역은 겉으로는 물류와 경공업의 허브, 교육기관이 밀집한 산업·교육 중심지로 알려졌지만, 그 이면에는 북한 사회의 가장 어두운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선교구역은 평양에서 가장 가난한 구역 중 하나로, 주민들의 삶은 척박하고 고단하다. 이곳의 시장 활동을 통해 북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주민들의 생존 방식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절박함을 들여다볼 수 있다.

● 가장 가난한 구역, 단층집(땅집)이 많은 선교구역

선교구역은 평양 시내에서도 경제적 빈곤이 가장 극심한 곳으로 악명이 높다. 이곳의 거리에는 허름한 단층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집마다 벽이 허물어지고 지붕이 새는 등 주거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골목마다 연탄 냄새와 함께 돼지·닭 등 가축 분뇨 냄새가 뒤섞여 진동한다. 주민들은 겨울이면 연탄을 직접 만들어 팔거나, 연탄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연탄을 굽는 연기와 그을음으로 집안 곳곳이 시커멓게 변해 있고, 어린아이들은 맨발로 진흙탕을 뛰어다닌다. 수도와 전기 공급은 불안정해, 밤이면 어둠 속에서 촛불이나 등잔불에 의지해 생활하는 모습이 흔하다.

● 봉제공장의 밀집과 소규모 경제활동

선교구역에는 평양에서 가장 많은 소규모 봉제공장이 몰려 있다. 이들 봉제공장은 국가의 공식 기업소보다는, 생계를 위해 가족 단위로 꾸려진 비공식 작업장이 대부분이다. 좁은 방 한편에 재봉틀을 놓고 어머니와 딸 심지어 어린 자녀까지 동원되어 옷을 꿰매고 바느질을 한다. 이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해도 받는 임금은 쌀 한 줌, 옥수수 몇 되에 불과하다. 작업장은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아 겨울엔 손이 얼고, 여름엔 땀에 절은 채로 일한다. 봉제공장 주변에는 원단 조각과 실뭉치가 널려 있고, 공장 밖에서는 일감을 구하지 못한 여성들이 일거리를 찾아 헤맨다. 아이들 역시 학교 대신 봉제공장에서 일손을 보태는 일이 다반사다.


● 새벽과 저녁, 무진천 뚝방의 메뚜기 시장

대동강 무진천 뚝방에서는 새벽과 저녁마다 ‘메뚜기시장’이 열린다. 이 시장은 공식 장마당이 아니라, 단속을 피해 임시로 열리는 비공식 시장이다. 장사꾼들은 경찰의 눈을 피해 이른 새벽이나 해 질 무렵에만 물건을 펼친다. 시장에는 연탄, 술, 두부, 채소, 고기, 심지어 살아있는 가축까지 각종 생필품이 거래된다. 메뚜기시장에는 평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모여든다. 여기서 하루 벌어 하루를 연명하는 이들은, 가진 것을 죄다 내다 팔아야만 겨우 끼니를 잇는다. 시장 한편에는 꽃제비(노숙 아동, 거리 빈민)들이 모여들어, 남은 음식 찌꺼기를 뒤지거나 구걸로 하루를 보낸다. 극심한 빈곤 탓에, 국수 한 그릇을 위해 몸을 파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어린이, 여성, 노인까지 거리에서 구걸하거나 시장에서 허드렛일로 생계를 이어간다. 시장에는 늘 단속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장사꾼들은 언제든 짐을 싸고 도망칠 준비를 한다.

● 술, 담배, 폭력의 그림자

선교구역에서는 집마다 술과 두부를 직접 만들어 판다. 술을 빚는 냄새가 골목마다 진동하고, 남성들은 저녁이면 집마다 모여 술을 마신다. 술과 담배에 찌든 삶이 일상화되어, 어린아이들조차 담배 심부름을 다닌다. 남성들은 술에 취해 아내를 때리는 가정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경찰이나 당국의 개입은 거의 없고, 피해 여성과 아이들은 그저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린 주민들, 거칠어진 손과 낡은 옷차림에서 이 지역의 고단함과 절망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술에 취한 채 거리를 배회하는 남성들, 구석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들, 그리고 선교영화관 주변에는 살기 위해서 매춘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이 구역의 일상이다.

● 선교구역의 이면: 구조적 한계와 생존 투쟁

선교구역은 평양의 산업·물류 중심지라는 겉모습과 달리 북한 사회의 극심한 빈곤, 비공식 경제, 사회적 약자들이 집중된 곳이다. 이곳의 단층집, 봉제공장, 메뚜기시장, 꽃제비 그리고 술과 담배에 찌든 일상은 북한 체제의 구조적 한계와 주민들의 생존 투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선교구역의 현실은 북한 사회가 안고 있는 깊은 모순과 변화의 필요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시장 활동은 단순한 경제 행위를 넘어, 체제의 허점과 주민들의 절박한 생존 본능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선교구역의 척박한 삶은 북한 주민들이 겪는 고통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희망과 연대의 흔적까지도 담고 있다.

3. 북한 체제의 구조적 모순과 한계 및 변화의 가능성

평양 선교구역의 현실은 북한 사회의 양면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동강 동안에 자리한 이 구역은 김철주사범대학,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등 주요 교육기관과 대형 산업시설, 전국 물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연운회사 등 국가적 상징 시설이 집약된 곳이다. 평양의 도시계획과 녹지 조성, 현대적 인프라는 외견상 ‘사회주의 번영’의 표본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척박한 주거 환경, 불안정한 전기·수도, 연탄과 가축 분뇨 냄새가 뒤섞인 골목길, 그리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주민들의 고단한 생존 투쟁이 자리한다.

선교구역의 단층집과 봉제공장, 새벽과 저녁마다 열리는 비공식 ‘메뚜기시장’은 국가 배급 체계 붕괴 이후 자생적으로 형성된 시장경제의 현장이다. 주민들은 가족 단위의 봉제 작업장, 연탄 생산, 임시시장 등 다양한 비공식 경제활동에 의존하며 그 과정에서 어린이와 여성까지 노동에 동원된다. 시장에서는 쌀, 옥수수, 생활필수품, 심지어 중국산 물품까지 거래되며 이는 북한 경제가 이미 시장화의 길로 깊숙이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빈곤, 가정폭력, 아동·여성의 거리 구걸 등 사회적 문제를 동반한다. 국가의 통제와 주민의 생존 본능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선교구역은 북한 체제의 구조적 모순과 한계를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변화의 가능성 또한 품고 있다. 시장경제의 확산과 주민들의 끈질긴 생존 투쟁은 북한 사회가 더 이상 과거의 경직된 틀에 머물 수 없음을 상징한다.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와 자생적 시장경제가 교차하는 이곳에서, 주민들은 절망 속에서도 연대와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선교구역의 그늘과 빛은 북한의 내일을 예고하는 거울이다. 변화의 물결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부터 스며들고, 그 작은 움직임이 언젠가 거대한 변혁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평양의 중심에서 벌어지는 생존의 현장은 북한 사회가 안고 있는 고통과 희망 그리고 변화의 동력을 동시에 품고 있다. 이곳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북한의 미래를 이해하는 데 있어 결코 피할 수 없는 과제이며, 그 변화의 씨앗은 이미 선교구역의 골목 어귀마다 뿌려지고 있다.

곽인옥 교수
inokkwak@hanmail.net
곽인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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