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에 거주하는 환자가 서울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는 데 소요된 비용이 연간 4조6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진료·교육·공공의료의 거점이 돼야 할 지역 국립대병원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지역 환자 유출로 인한 비용과 지역 국립대병원에 대한 국민 인식’에 따르면, 지역 거주 환자가 지역 국립대병원 대신 서울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할 경우 교통비·숙박비·기회비용 등을 포함한 순비용은 최대 4조62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순비용은 지역 유출 환자가 서울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발생한 총비용에서 환자의 거주 지역에서 진료를 받을 때 발생한 총비용을 차감한 값이다. 여기에 서울 상급종합병원과 지역 국립대병원 간 진료비 차이를 반영하면 순비용은 약 1조7537억원 수준으로 늘어난다.
중증질환일수록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을 먼저 고려한다고 답했다. 지방 거주민의 국립대병원 인식도 조사 결과, 응답자의 81.2%가 지역의료 위기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이는 지역 내 의료기관에 대한 신뢰 부족, 전문 인력과 장비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립대병원에 대한 개선 요구도 높았다. 응답자의 81%는 ‘전문 의료인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응급질환 진료 역량 고도화’(80.5%), ‘중증질환 진료 역량 강화’(80.1%) 순으로 시급한 개선 과제를 꼽았다. 지역 국립대병원이 공공보건의료의 중심축이 되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80.9%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지역의료가 환자 신뢰를 되찾지 못한다면 서울로의 쏠림은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공공의료 인프라 재정비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희년 보건의료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은 “향후에도 환자 유출 현상이 심화되면 환자의 진료비뿐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의 생산성 손실, 교통비, 숙박비, 간병비 등 복합적 비용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며 “국립대병원 역량 강화를 통해 지역의료체계의 완결성을 제고하는 일은 비효율로 인한 사회 전반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국립대병원이 지역의료의 중심축이 될 수 있도록 책임의료기관 제도 개선과 협력체계 구축 등 정책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면서 “진료 공백 해소와 중증질환 진료 연계를 위해 국립대병원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