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으면 못 하는 ‘비거니즘’…선택지 없는 청년들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1-11-25 07: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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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으면 못 하는 ‘비거니즘’…선택지 없는 청년들 [쿠키청년기자단]
채소로 만든 비건 초밥.   사진=조수근 객원기자

‘비거니즘’은 동물을 착취해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거부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한 생활방식이다.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이들인 ‘비건’은 동물의 무고한 희생을 원치 않는다. 비거니즘은 가치소비에 관심이 큰 MZ세대의 소비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높은 비건 제품 가격은 경제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청년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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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보다 비싼 채식


지난해 한국채식협회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에는 총 30곳의 비건 전문 식당이 있다. 이들 식당의 식사 메뉴 가격을 조사한 결과 메뉴당 평균 가격은 1만4635원이다. 같은 해 6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청년 1인 가구의 월평균 식비가 50만2000원이라고 발표했다. 하루 세 끼를 먹는다고 가정하면, 한 끼 평균 식비는 5570원인 셈이다. 서울시 비건 식당 메뉴 평균 가격이 청년 1인 가구의 평균 식비보다 약 3.8배 비싸다.

실제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비건 식당에서는 1만8000원짜리 김밥을 판다. 이는 지난 10월 서울시 물가 정보에서 공개한 김밥 평균 가격 2500원의 7배가 넘는다.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대학생 A씨는 “비건 식당을 이용할 때 가장 주저하는 부분은 가격”이라며 “매 끼니 이용하기에는 비싼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비건 식당에서 판매하는 음식이 유달리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비건 식당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B씨는 “대부분 유기농 재료를 사용하기에 원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건강식을 표방하는 메뉴 특성상 가격 상승은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B씨는 또 “비건 개념이 아직 생소하기 때문에 많은 식당이 세련된 인테리어로 어필하는 전략을 취한다”며 “인테리어 비용이 가격 상승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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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품도 예외는 아니다


공산품도 비건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제조 과정에서 동물성 성분을 첨가하지 않고, 출시 전 동물실험을 하지 않으면 된다. 특히 샴푸는 비건 제품이 많이 나오는 품목이다. 현재 수십 종이 넘는 비건 샴푸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다.

한 포털 사이트 쇼핑 카테고리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비건 인증 샴푸 30개, 비건 인증을 받지 않은 일반 샴푸 30개 가격을 각각 살펴봤다. 비건 인증 샴푸는 평균 가격은 2만6560원, 일반 샴푸는 평균 가격은 1만6590원이다. 1.6배 차이다.

비건 샴푸가 비싸 ‘노푸’(샴푸를 사용하지 않고 물로만 머리를 감는 방법) 택했던 대학생 C씨는 “차마 일반 샴푸를 사용할 수 없어 노푸를 시작했었다”며 “일주일쯤 지나니 머리에서 냄새가 나고 간지러웠다. 아르바이트하러 가서도 욕을 많이 먹었다”라고 말했다. C씨는 “시간이 지나니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못 가 노푸를 그만뒀던 기억이 있다”고 털어놨다.

한 비건 업계 관계자는 “비건 제품은 주로 경제력이 있는 20~40대 여성을 타겟팅한다”며 “고급화 전략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돈 없으면 못 하는 ‘비거니즘’…선택지 없는 청년들 [쿠키청년기자단]
할인판매점에 비치된 저렴한 위생용품.   사진=조수근 객원기자

비싼 가격 못 이겨 비건 그만둡니다


광고회사 대홍기획에서는 ‘데이터로 읽는 비거니즘 맥락’ 리포트를 지난 8일 발간했다. 비건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전체 응답자 중 42%가 ‘제품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청년을 필두로 한 비건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만큼, 시장에도 이들의 소비 사정에 맞는 제품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년 전 비건 생활을 시작한 대학생 D씨는 “좋다고 소문 난 비건 생필품을 마련하고 한동안 라면이나 양배추만 먹었던 적이 있다”며 “동물 생명을 존중하다 나부터 죽을 뻔했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비건 제품을 사치품이라고 인식하는 배경에는 가격이 있는 것 같다”며 “소비자들을 위해 가격대가 다양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조수근 객원기자 sidekickroot@gmail.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