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 찾으러 간 윤석열·이재명…‘이대녀’는 누가 챙길까

李 반페미니즘 글 공유…尹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악용”
정치권 “여성의 삶에 공감하지 못했고, 당선을 위해 시민을 취사선택”

기사승인 2021-11-26 06:00:02
- + 인쇄
이대남 찾으러 간 윤석열·이재명…‘이대녀’는 누가 챙길까
쿠키뉴스 DB.


“엄연히 청년의 ‘반’을 차지하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어요. 도무지 찍을 후보가 없네요”

청년층을 겨냥한 거대 양당 대선후보들의 표심 쟁탈전이 뜨겁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주목하는 청년이 일부 20대 남성집단에 국한되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20·30세대 공략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들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에게 저조한 지지를 보낸 취약계층이다. 특정 정당·정치인에 대한 충성도가 낮다는 점도 특징이다. 내년 대선 승패를 좌우할 ‘게임 체인저’로 떠오른 이유다.

이 가운데 20대 여성의 표심은 갈 곳을 잃었다. 두 후보가 ‘이대남(20대 남성)’을 의식한 공약에만 주력한 행보를 보인 탓이다. 대학생 김모(24·여)씨는 “청년, 청년 하는데 진짜 청년을 위하는 정치인은 없는 것 같다”며 “특히 여야 후보들이 여성들의 삶과 맞닿은 문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두 후보의 ‘마초 이미지’도 2030 여심 이탈에 힘을 실었다. 이 후보는 형수 욕설 논란과 여배우 스캔들로 인해 여성 유권자로부터 지지를 잃었다. 취업준비생 이모(27·여)씨는 “유튜브에서 이 후보의 형수 욕설 동영상을 봤다. 도저히 찍을 수 없겠더라”라고 했다. 윤 후보도 잇따른 실언에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직장인 김모(33·여)씨는 윤 후보에 대해 “전두환씨 옹호나 페미니즘 관련 발언을 접하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두 후보의 ‘반(反) 페미니즘’ 메시지도 기름을 부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10일 페이스북에 ‘홍카단(홍준표 의원 지지자)이 이재명 후보님께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을 공유했다. 해당 글의 작성자는 2030 남성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을 외면한 원인이 페미니즘과 부동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를 향해서는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달라”, “페미니즘을 깨부숴달라”고 요구했다.

이 후보는 지난 8일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글을 회의 구성원들에게 공유했다. 남성 중심 커뮤니티 에펨코리아(펨코)에 올라온 해당 글에도 “민주당은 페미(페미니즘)와 관련하여 젊은 남자들을 배척했다”, “젊은 남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문재인 정부의 페미 우선적 정책과 차별화를 이뤄낼 수 있어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윤 후보에게도 실망감을 표출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는 지난 8월 강연에서 “페미니즘이란 것도 건강한 페미니즘이어야지, 이게 선거에 유리하고 집권 연장하는 데 악용돼선 안 된다”며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악용돼서 남녀 간 건전한 교제를 막는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국내 저출산 문제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맥락상 페미니즘 탓에 이성 교제가 이뤄지지 않아 저출산 문제가 심화했다는 주장인 셈이다. 이에 쓴소리가 쏟아졌다. 보수 성향 남성 커뮤니티 일부 시각이 대선후보 메시지로 나온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이대남 찾으러 간 윤석열·이재명…‘이대녀’는 누가 챙길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연합뉴스

 

두 후보의 여성가족부 개편 주장도 도마에 올랐다. 이들은 여가부 이름에서 ‘여성’을 지우자고 제안했다. 20∼30대 남성들의 여가부에 대한 반발심을 상당 부분 수용한 셈이다.

이 후보는 지난 9일 페이스북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도 옳지 않다”며 여가부 명칭을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후보도 여가부 폐지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는 지난달 21일 “여성가족부가 양성평등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홍보 등으로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 줬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혐오 정서에 편승해 표를 얻겠다는 ‘갈라치기식’ 정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청년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큰소리치지만, 실상은 일부 남성 주장에만 매몰돼 젠더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20대 여성을 포함한 청년층이 겪는 사회 구조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평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38개 여성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 후보의 여성 관련 정책을 비판했다. 이들은 “현재 거대 여야 대통령 후보들의 행보를 보면 과연 성평등 국가 실현에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며 “젠더 갈등을 부추기고 이를 선거에 이용하고 있다”고 목소리 높였다.

정치권에서도 여성 유권자를 경시하는 정치 행보가 시대 퇴행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표적인 청년 정치인으로 꼽히는 정치인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두 후보를 ‘아재’라고 규정했다. 그는 “기득권 두당의 후보들이 건강한 여성주의를 정의하고, 무고죄 강화를 공약하다 급기야 페미니즘을 멈춰달라는 커뮤니티 글을 공유하기에 이르렀다”며 “끝내 여성의 삶에 공감하지 못했고, 당선을 위해 시민을 취사선택했다”고 꼬집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지난달 11일 “여성과 관련한 갖가지 구설과 의혹에 휩싸인 분들은 번지르르한 공약을 내놓아봐야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 게다가 구조적 해법은 보이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고 짚었다.

윤김진서 유니브페미 대표는 25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특정 집단을 배제하거나 젠더 대립을 유발하는 식의 표심 경쟁은 낡은 정치”라며 “여전히 여성을 가부장제의 보호 아래 두는 대책을 벗어나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여성폭력·인권·기후·환경 문제 등을 해결할 비전을 제시하는 게 선 과제”라고 말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