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생애 가장 시원했던 여름 [요즘 시선]

기사승인 2023-08-27 16: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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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생애 가장 시원했던 여름 [요즘 시선]
전국 대부분의 지역의 낮 최고기온이 33도 안팎까지 치솟은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양화 한강공원에서 시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사진=김예솔

“우리는 지금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나사(NASA)의 기후 과학자 피터 칼무스(Peter Kalmus)가 지난달 자신의 SNS에 남긴 말이다. 올해 여름이 가장 시원하다는 말은 동시에 앞으로의 여름은 지금보다 뜨거울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그럴듯한 괴담이나 풍문이 아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올해 7월은 지구 표면과 해수면의 온도가 역대 가장 높았던 달로 기록되었다. 지난달이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달이었던 것이다.

그 시절, 생애 가장 시원했던 여름 [요즘 시선]
19일 오후 생태 체험을 위해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공원을 찾은 아이들이 직접 잡은 물자라와 잠자리 유충을 관찰하고 있다.   사진=김예솔

폭염, 집중호우 같은 극단적인 날씨가 반복되면서 우리 기억 속 뚜렷한 사계절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미 수많은 학자도 한반도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훗날 우리는 이 ‘가장 시원한 여름’을 추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올해와 같은 폭염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가장 먼저 우리가 제약받게 되는 것은 ‘야외 활동’이다. 산업 현장을 비롯한 다양한 장소에서 실외 활동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 시절, 생애 가장 시원했던 여름 [요즘 시선]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양화 한강공원을 찾은 한 시민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김예솔

지난 2일 기상청이 공개한 열 스트레스에 대한 미래 전망 분석에 따르면 현재 9일 미만으로 발생하는 극한 열 스트레스 일이 21세기 후반기에는 90일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1년 중 3개월 이상을 여름철 무더위로부터 신체적 스트레스를 받고, 이로 인해 온열질환자의 수도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산책이나 자전거 타기를 미래에는 더워서 하지 못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시절, 생애 가장 시원했던 여름 [요즘 시선]
21일 오전 경기 고양시 고봉산에서 신미순(53·여)씨가 등산로를 걷고 있다.   사진=김예솔

수년째 매일 출근 전 등산을 하고 있다는 신미순(53·여)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말복이 지나고 처서에 접어들면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시원하다 못해 쌀쌀했는데, 요즘은 아침에도 무척 후덥지근하다”며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도 옛말”이라고 말했다. 신씨는 “여름이 점점 더 뜨겁고 길어지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라고도 했다.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이어지는 이상 기후를 최전선에서 체감하고 있는 곳은 바로 농촌이다. 도시에서는 이상 기후를 날씨 변화로 느낀다면, 농촌에서는 농작물로 직접적인 변화를 겪는다.

그 시절, 생애 가장 시원했던 여름 [요즘 시선]
처서를 이틀 앞둔 21일 오후 경기 파주시 검산동 일대에 논이 넓게 펼쳐져 있다.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는 이상 기후는 벼 성장을 더디게 해 결과적으로는 수확량에도 영향을 준다.   사진=김예솔

고온다습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아열대 작물 재배지가 점점 북상하는 동시에, 기존 산지를 잃어버리는 농가도 존재한다. 지난해 4월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기후변화 시나리오 반영한 6대 과일 재배지 변동 예측에 따르면 단감과 감귤은 재배 적지와 재배 가능지가 지속해 증가하는 반면, 사과는 급격하게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었다. 마트에 수북이 쌓여 있는 사과를 훗날 교과서에서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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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경기 파주시 조리읍 능안리의 한 농장에서 사과가 익어가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사과는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2070년대에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사진=김예솔

경북 상주에서 포도 농사를 짓는 신상협(64·남)씨는 한 해 한 해 기후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7년 전 귀농해 포도 농사를 짓기 시작한 신씨는 포도 수확이 매년 늦어지고 있어 걱정이다. 그는 “포도가 익어야 할 7, 8월에 비가 집중적으로 쉬지 않고 내리다 보니 포도가 익지 못한다”며 “반복되는 폭염과 폭우에 사람이 지치듯 식물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이파리가 곪고 시들면, 결과적으로 포도도 정상적으로 익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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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일 경북 상주시 화동면 평산리의 한 포도밭에서 청포도가 익어가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포도는 총 재배지 면적을 2050년대까지 유지할 수 있으나, 이후 급격히 줄어들며 2070년대에는 고품질 재배가 가능한 지역이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사진=김예솔

기고=김예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사진을 찍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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