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4일 (4)
국민성장펀드 출자하려 줄섰다…GP-LP ‘관계의 역전’

국민성장펀드 출자하려 줄섰다…GP-LP ‘관계의 역전’

국민성장펀드 위탁운용사 11곳 선정
“얼마나 받을 수 있나” LP 문의 쇄도
GP “어디에 얼만큼 줄지 고심”

승인 2026-06-04 06:00:06
지난 27일 국민성장펀드 위탁운용사로 총 11개 운용사가 선정됐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지난 27일 국민성장펀드 위탁운용사로 총 11개 운용사가 선정됐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국민성장펀드 위탁운용사(GP)로 선정된 벤처캐피털(VC)과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예상치 못한 고심에 빠졌다. 통상 펀드 조성 과정에서는 GP가 기관투자가(유동성 공급자, LP)를 찾아다니며 출자를 요청하지만, 이번 국민성장펀드에선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선정된 GP를 향해 금융권 LP들의 문의가 쏟아지면서 운용사들은 이제 “펀드가 채워질까”가 아니라 “누구에게 얼마나 물량을 배정할 것인가”를 먼저 따지는 상황이 됐다.

일각에서는 국민성장펀드가 단순한 정책성 자금을 넘어 국내 모험자본 시장의 자금 흐름과 펀드레이징 관행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성장펀드 위탁운용사로 선정된 다수의 GP들은 최근 은행·보험·증권·캐피탈 등 금융권 LP들로부터 잇달아 출자 문의를 받고 있다. 한 GP 관계자는 “전화받기 바쁠 정도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보통은 우리가 설명회를 열고 직접 찾아다니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먼저 참여 가능 여부부터 묻는다”고 전했다.

국민성장펀드 1차 GP 11개사 선정…“얼마나 받을 수 있나” LP 문의 쇄도

국민성장펀드는 출범 단계부터 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정부가 향후 5년간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를 단계적으로 공급하기로 하면서 이 가운데 민관합동펀드(간접투자) 35조원이 벤처캐피탈(VC)·사모펀드(PE) 업계의 ‘핵심 먹거리’로 떠올랐다.

지난달 27일 국민성장펀드 운영위원회는 콘테스트 방식 심사를 거쳐 총 11개 위탁운용사를 선정했다. 앞서 출자사업 공모에는 총 81개 운용사가 지원해 평균 7.36대 1 경쟁률을 기록했으며, 신생 GP를 대상으로 한 도전리그 경쟁률은 17.5대 1까지 치솟았다. 업계에서는 “한 번 국민성장펀드 운용 실적을 쌓으면 향후 추가 출자사업에서도 유리한 레퍼런스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종 선정된 운용사들은 도전·소형·대형·코스닥·M&A·AI반도체 중형 등 분야별로 펀드를 조성한다. 프로젝트 위탁 부문을 맡은 키움프라이빗에쿼티를 제외한 나머지 10개 GP는 현재 블라인드펀드 자금 모집(펀드레이징)을 진행 중이다. 블라인드펀드는 투자 대상을 사전에 정하지 않고 먼저 자금을 모집한 뒤 향후 투자처를 발굴하는 방식의 펀드를 말한다.

펀드레이징 과정에서는 통상 GP가 LP를 찾아다니며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출자를 요청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 국민성장펀드 1차 자펀드에선 구도가 일부 뒤집힌 모습이다. 선정된 GP들을 향해 “조건은 나중에 보더라도 일단 참여할 수 있느냐”는 금융권 LP들의 문의가 잇따르면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좋은 GP에 LP가 몰리는 현상 자체는 원래도 있었지만, 이번처럼 전략이나 세부 조건을 살펴보기 전 단계에서 ‘배정 가능 여부’부터 묻는 분위기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국민성장펀드 참여 자체가 정부의 첨단산업 육성 정책에 동참한다는 상징성을 갖는다고 보고 있다. 일부 금융기관은 투자수익률뿐 아니라 정책금융 참여 이력과 향후 출자사업 참여 기회 측면에서도 국민성장펀드를 주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도 금융가 전경. 임성영 기자.
여의도 금융가 전경. 임성영 기자.
GP, 자금 모집에 열올리던 과거와 달리 ‘어디에 얼만큼 줄지’ 고심 

상황이 이렇다 보니 GP들의 고민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펀드 결성에 필요한 자금을 채울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였다면, 지금은 어느 LP에 얼마만큼의 물량을 배정할지가 더 큰 과제가 됐다. 한꺼번에 몰린 수요를 어떻게 나눌지가 핵심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한 운용사 임원은 “이번 딜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향후 딜까지 고려해 LP 구성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상당수 GP들은 특정 기관에 물량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안분분배’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국민성장펀드가 단발성 사업이 아닌 만큼 장기적인 자금 라인과 협력 네트워크를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일부 운용사는 동일 금융지주 내에서도 계열사별 출자 한도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물량을 배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실제 배분 과정에서는 단순 계열 구분보다 기존 거래 관계가 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운용사는 같은 지주 계열이라도 거래 이력이 없던 은행은 이번 펀드에서 제외하고, 기존 거래 관계가 있던 증권에만 물량을 배정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또 다른 운용사들도 기존 거래처를 우선 고려하면서 일부 물량을 신규 LP에게 개방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이번처럼 출자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LP 수요가 동시에 몰린 경우는 보기 드물다”며 “국민성장펀드가 국내 펀드레이징 시장의 풍경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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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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