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동으로 조사를 수행하는 한국의료패널의 ‘미충족 의료 통계’ 보고서를 보면 진료나 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병원 방문을 포기한 사례와 이유를 알 수 있다. 응답자가 가장 많이 꼽은 이유는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가 가장 많을 정도로 높은 의료접근성을 갖춘 나라지만, 정작 시간이 없어 병원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취재를 이어가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왜 병원이 가까이 있는데도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걸까. 여러 사람으로부터 찾은 답은 단순했다. 몸이 아플 때 육아나 업무 등 자신의 역할을 대신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자신을 위해 반차나 연차를 낸 적이 없다는 워킹맘 A씨는 “조부모가 아이를 돌봐줘서 아플 때 쉴 수 있는 부모들도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안 돼서 연차는 아이 병원 갈 일이 있을 때만 쓴다”며 “아이가 아파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면 하루 종일 돌보는 일은 결국 우리 부부의 몫이다”라고 말했다.
몸에 이상이 있어도 회사에 발목 잡혀 상비약으로 버틴다는 직장인 B씨, 연중 가게를 비우지 못하는 자영업자 C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결국 자리를 대신해 줄 사람이 없는 한 걸어서 5분 거리의 병원도 쉽게 갈 수 없는 곳이 된다.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생활이 반복되면 부작용이 누적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워킹맘 D씨는 체력이 떨어지면서 육아의 질이 낮아졌고 결국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아파도 쉬지 못하는 구조가 개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을 넘어 노동시장 이탈로 이어지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최근 그 돌파구로 비대면진료, 심야진료, 공공심야약국 등을 이용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병원 운영시간을 늘리는 방식이 아닌, 근로자가 근무 중에 부담 없이 병원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다지는 일이 필요하다고 짚는다. 의료접근성을 높이려면 병원 문을 오래 열어두는 것보다 필요한 사람이 제때 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시작하며 내세웠던 구호는 ‘아프면 쉬는 사회’였다. 내년에 상병수당 본 사업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은 여전히 아파도 쉬지 못하는 사회다. 건강한 사회는 아프지 않는 사회가 아니다. 아파도 빨리 회복할 수 있는 사회다. 물리적 거리보다 시간과 여건의 문제를 고민하고 개선해야할 때다.
이찬종 기자 hustlelee@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