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전 법에 발목 잡힌 비영리법인

기사승인 2022-02-14 06: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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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전 법에 발목 잡힌 비영리법인
픽사베이. 
몸집이 커졌다. 날씨도 바뀌었다. 그러나 옷은 그대로다. 65년 동안 말이다. 낡은 민법 조항으로 인해 비영리법인 설립·운영에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

9일 통계청 법인세 신고현황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법인세를 낸 비영리법인은 3만7083개(학교·의료법인 등 포함)다. 

비영리법인은 학술과 종교, 자선, 사교 등 기타 영리 아닌 사업을 목적으로 한다. 시민·사회운동부터 연구, 친목 도모까지 다양하다. 비영리법인은 일반 단체보다 공신력이 높다. 정기적인 감사·보고로 투명성도 담보된다. 공익법인으로 인정되면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비영리법인 설립은 주무관청의 허가가 필요하다. 환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법인은 환경부의 허가를, 근로자 고충 상담 목적은 고용노동부의 허가를 받는 식이다. 기준은 불명확하다. 설립·감독 규칙이 있지만 추상적이다. 규칙이 없는 주무관청도 있다. 각 주무관청의 재량에 맡겨야 한다. 같은 사안이라도 일선 공무원의 해석에 따라 허가 여부가 달라진다. 비영리재단의 목적 또는 사업이 여러 주무관청에 걸쳐있을 경우, 떠넘기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허가에 지쳐 비영리법인에 대한 기부와 출연을 주저하는 사례도 있다. 

신권화정 사단법인 시민 사무처장은 “주무관청마다 비영리법인 허가 조건이 다르고, 해석도 다르다. 주관성이 개입된다”며 “주무관청의 재량이기 때문에 허가가 반려돼도 소송 등으로 반박하기 어렵다. 비영리법인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을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영리법인 중 특히 공익활동 법인들은 본인들의 이익이 아닌 사회적 가치 추구를 위해 일한다”며 “허가제로 문이 좁아져 공익활동이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법이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비영리법인의 설립과 허가, 감독 등은 민법에 규정돼 있다. 지난 1958년 제정된 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65년이 흘렀다. 당시 논의되지 않았던 비영리법인의 합병·분할 등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정이 없어 일부 비영리법인에서는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YWCA는 1922년 창립된 비영리조직이다. 100여년 동안 전국 각 지역에서 청년·여성·기독교·사회 운동을 펼쳐왔다. 지방분권화가 시작됐다. 각 지역 사무소에서도 자치성과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는 논의가 일었다. 중앙법인에서 지역 사무소의 사업 허가를 내려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2019년부터 지역에 비영리법인을 설립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순탄하지 않았다. 법규가 없었다. 분사무소 폐지 후 새로운 비영리법인을 설립해야 했다. 기존 지역 YWCA 분사무소와의 연속성은 인정되지 않았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소용없었다. 새로운 법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무관청에 맞는 목적과 정관을 새롭게 적어야 했다. 여성·환경·시민운동 등 여러 분야의 사업을 진행하던 분사무소는 한 분야만을 택한 후 활동을 정리했다. 기존 분사무소의 직원들은 모두 해고된 후, 새로운 법인의 이름으로 재고용됐다.

박동순 한국YWCA연합회 조직혁신지원국장은 “행정적인 소모가 엄청났다. 현장에서 ‘이게 실화냐’고 반문할 정도로 법이 엉성했다”며 “각 기관마다 지침, 세법, 기부금법 등이 상충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개정이 됐지만 지침에 반영되지 않은 부분도 허다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주무관청에 맞춰 비영리법인의 활동을 정비해야 했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고 융합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인데 이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해외는 다르다. 해외에서는 준칙주의 또는 인가주의로 법인을 설립하게 한다. 준칙주의에서는 법인 설립 요건을 갖추면 당연히 법인이 만들어진다. 인가주의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주무관청이 반드시 인가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독일 등은 법인 설립에 준칙주의와 인가주의를 적용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신고만 하면 비영리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 스위스는 법인 설립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영리법인 관련 민법 개정 시도가 있었다. 2004년과 2011년, 2014년 3차례에 걸쳐 허가주의와 합병·분할 내용 신설 등의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했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전문가는 비영리법인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미래 사회는 여가시간이 늘어나면서 사회단체·모임 등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비영리법인은 이러한 흐름의 한 축이 될 것”이라며 “현재의 민법으로는 비영리법인을 활성화할 수 없다. 헌법이 보장하는 지속적인 결사의 자유도 제한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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