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의사기념사업회’, 가네코 후미코 여사 기리는 사업 ‘박차’

‘박열의사기념사업회’, 가네코 후미코 여사 기리는 사업 ‘박차’

세종시 ‘가네코 후미코 선양사업회’와 업무협약 체결
박열의사 부인 후미코 여사 서거 100주기 추모 사업 탄력

기사승인 2025-04-23 14:11:57
박열의사기념사업회와 ‘가네코 후미코 선양사업회’가 후미코 여사의 독립 정신을 재조명하기 위해 두 손을 맞잡았다. 문경시 제공.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의 부인이자 사상적 동지인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 여사를 기리는 사업이 문경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23일 문경시 박열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서원)에 따르면 가네코 후미코 여사의 독립 정신을 재조명하기 위해 세종시에서 활동하는 ‘가네코 후미코 선양사업회’와 손을 맞잡았다.

1903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후미코 여사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 1919년까지 7년간 세종시 부강면(종전 충북 청원군 부용면 부강리)에서 거주했었다.  

당시 가정형편이 어려워 세종시 부강면에 소재한 할머니댁을 찾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그는 일본인의 조선인 차별과 학대에 반일 감정을 키웠으며, 부강공립심상소학교와 부강공립고등소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다시 건너가 박열의사를 만났다.

후미코 여사는 박열 의사의 사상과 독립을 위한 노력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일본인임에도 독립운동에 함께하는 결기를 보였다. 

그는 "내가 조선에 살때 보고 들은 것으로 해서 조선인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모든 반항 운동에 비상한 동정심을 가지게 됐다"면서 "나는 일본인이면서도 일본이 덧없이 미워 속이 터질 지경"이라고 울분을 토해냈다.  

박열 의사와 후미코 여사는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천황 암살 기도 혐의로 ‘대역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는 위기를 맞았다. 

이들은 사형선고 이틀 전인 1926년 3월 23일 옥중에서 혼인신고를 했으며,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았다.  

하지만 후미코 여사는 1926년 7월 23일 23세의 젊은 나이에 의문의 삶을 마감하게 된다.

후미코 여사는 이런 공적을 인정받아 201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후세 다쓰지 변호사와 함께 일본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 건국훈장(애국장)을 추서받는 영예를 안았다. 

이를 기리는 ‘가네코 후미코 선양사업회’는 후미코 여사가 한국에서 거주한 세종시를 중심으로 구성한 민간단체다.  

이번 업무협약으로 ‘가네코 후미코 선양사업회’는 매년 7월 23일 가네코 후미코 여사 추모식에 참석하고, 여사가 유년시절 한국에서 보냈던 7년간의 시간을 사진 전시를 통해 조명할 예정이다. 

특히 여사가 다녔던 부강초등학교 학생들이 박열의사기념관을 찾아 묘소를 참배하고 다양한 체험 교실 등을 공동 운영해 독립 정신을 심어준다는 복안이다. 

‘가네코 후미코 선양사업회’ 이규상 회장은 “그동안 민간차원에서 가네코 후미코 여사의 한국생활 7년의 흔적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면서 “이번에 문경의 박열의사기념사업회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선양사업이 더욱 탄력을 받게 돼 매우 뜻깊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에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서원 이사장은 “가네코 후미코 선양사업회와 함께 여사의 유년 시절 7년간의 흔적을 낱낱이 발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내년도 100주기 추모사업의 내실 있는 추진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문경=노재현 기자 njh2000v@kukinews.com
최재용 기자
ganada557@hanmail.net
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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