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10명의 ‘굿걸’이 자신의 허들을 뛰어넘길 바랐다”

이은호 / 기사승인 : 2020-07-10 08: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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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걸’ 최효진 PD “건강하고 재밌는 경쟁 만든 것 같아 뿌듯”

▲ Mnet ‘굿걸’을 연출한 최효진 PD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과 트월킹을 즐기는 래퍼 퀸 와사비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지난 2일 방송한 Mnet ‘굿걸: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이하 굿걸) 마지막 회에서 슬릭은 퀸 와사비에게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우리가 스펙트럼의 양 끝에 있는 사람들일까”라고 묻는다. 그가 찾은 답은 이랬다. “우리 둘은 ‘굿걸’ 그 누구보다도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 자유롭고, 스스로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웃는 얼굴로 지켜볼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감동한 퀸 와사비는 “살짝 눈시울이 붉어질 뻔했지만” 울진 않았다. 자신은 “상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서로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우정을 쌓으며 성장하는 여성 음악인들을 보여준 프로그램. ‘굿걸’은 다양한 여성 음악인을 조명한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깊지만, 그들이 ‘자신다움’을 잃지 않고도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와 화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욱 박수받을 만하다. Mnet ‘슈퍼스타K4’, ‘머스트 밴드의 시대’, ‘쇼미더머니’ 시리즈를 거쳐 ‘굿걸’을 세상에 내놓은 최효진 PD를 9일 서울 상암산로 CJ ENM 센터에서 만났다. ‘굿걸 시즌2’에 대한 확답을 듣겠다며 시작한 인터뷰였다.

Q. ‘으뜸이’를 꼽기 어려울 만큼, 출연자 10명 모두의 매력이 빛난 프로그램이었다. 출연자들은 어떻게 섭외했나.

“처음엔 여성 래퍼들만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래퍼들 위주로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니, 의외로 여성 아티스트들끼리 교류가 많지 않고 그러면서도 서로 협업하고 싶단 열망이 강하다는 걸 느꼈다. 그렇다면 굳이 힙합으로 장르를 국한할 필요는 없겠다, 힙합과 알엔비로 확장해서 더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만나게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Q. 슬릭이 마지막 회에서 말했듯, 슬릭과 퀸 와사비는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둘의 갈등이 그려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많은 분이 1회에서 ‘Mnet이 일부러 슬릭과 퀸 와사비를 붙였구나’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제작진이 두 사람을 따로따로 만났을 땐, 그들이 그렇게 다른 세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음악에 대한 확신이 뚜렷하다. 서로 처음 만났을 땐 데면데면했을지언정, 지금은 정말 가까운 사이다. 제작진도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고 예상했고. 다만 둘이 어떤 음악을 할까, 어떻게 어우러질까에 대한 궁금증은 계속 있었다.”

슬릭과 퀸 와사비는 마지막 회에서 함께 무대에 섰다. 슬릭은 최 PD에게 ‘저희 혼성그룹 거북이 같죠’라고 물었단다. 최 PD는 “대중적이면서도 자신들의 생각했던 ‘무해한데 유쾌한 음악’을 잘 뽑아냈다”며 기특해 했다.

▲ '굿걸'의 슬릭과 효연
Q. 특히 슬릭은 1~3화의 주인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 캠프에서 효연이 슬릭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은 ‘굿걸’을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우리도 예상하지 못했던 드라마였다. 사실 처음엔 송캠프 기간을 4~5일 정도로 계획했다. 이틀에 걸쳐서 모든 출연자가 서로를 1대 1로 얘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게 한 뒤에 공연을 준비하길 바랐다. 그런데 다들 일정 조율하기가 어려워서 송캠프가 1박2일로 짧아졌다. 우리 딴에는 출연자를 배려하려고 소규모로 팀을 묶은 건데, 슬릭 혼자만 남는 상황이 된 거다. 결국 가장 안 어울릴 것 같은 효연과 슬릭이 팀이 됐다. 제작진도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지켜봤는데, 누구보다 잘 준비해와서 깜짝 놀랐다. 스태프들도 ‘엄마 미소’ ‘아빠 미소’를 달고 리허설을 본 기억이 있다.”

Q. 슬릭 뿐만 아니라 ‘굿 걸’의 출연자 모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게 매력적이었다. 연출자로서 느낀 그들 각자의 매력을 짧게 소개해달라.

“우선 퀸 와사비는 단순할 정도의 순수함, 슬릭은 진심이 돋보였다. 제이미는 ‘핵인싸’인데다 다재다능하다. 크루 탐색전 무대 때 ‘노래, 랩 다 했으면 좋겠다. 스탠딩 코미디를 해도 된다’고 말했을 정도다. 예은은 모두에게 따뜻해서 늘 안아주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지우(그룹 카드 멤버)는 시크하다. 아이돌이라는 배경 때문에 눈치를 더 많이 볼 수도 있는데, 쿨한 매력이 있다. 영지는 방송이 라이브를 다 담아내지 못해 안타까울 정도였다. 막낸데도 언니들을 이끄는 타입이었다. 효연은 귀엽고 재치 있고 음색도 섹시하다. 치타는 현명한 중재자라고 할까. 정서적으로도 의지가 되고 분위기를 잘 정리해줬다. 에일리는 진정한 보컬리스트다. 제작진도 감탄하며 들었다. 마지막으로 윤훼이, 감정에 솔직하고 충실한 친구다. 멜로디도 잘 만들고 음색도 유니크해서, 관객들 반응이 무척 좋았다.”

▲ ‘굿걸’ 출연진 단체 사진
‘굿걸’은 시청자의 평가 권력을 벗어난 여성 음악인들이 얼마나 자유롭고 솔직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서로 다른 여성들, 오직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여성들이 TV에 많이 등장할수록, 사회는 더욱 다양한 여성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Q. ‘굿걸’의 가장 큰 성취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건강한 경쟁을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볼 수 있는 서사를 만들었다는 게 가장 기쁘다. 여러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거쳐오면서 이 형식이 어째서 재밌는지,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를 많이 체득해왔다고 생각한다. 반면 ‘굿걸’은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고 스트레스도 컸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재밌을까’ ‘섭외 잘한 걸까’ 했을 정도다.(웃음)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보니, 무해하고 따뜻한 쇼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된 것 같다.”

Q. 지난해 방송했던 ‘퀸덤’이 사랑받은 이유도 비슷했던 것 같다. 과거엔 Mnet ‘언프리티랩스타’처럼 서로 경쟁하는 프로그램이 유행이었지만, 요즘은 ‘퀸덤’이나 ‘굿걸’처럼 ‘여돕여’(여자가 여자를 돕는다) 서사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 같다.

“근 몇 년 전부터 다들 여러모로 힘들고 지친 시기여서, 매체에 나오는 콘텐츠들이 덜 불편하거나 유쾌하길 바라는 정서들이 있는 것 같다. 다만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시청자가 이걸 원해서 만들었다’라기보단,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면들을 드러내다 보니 지금에 온 것 같다. 어느 순간에는 독하거나 뾰족한 형태의 콘텐츠가 재밌어지는 시기가 자연스럽게 올 수도 있다.”

‘굿걸’ 1회에서 제이미는 “‘굿걸’(이라는 제목을) 듣고 속으론 ‘배드걸(bad girl)들이 모이겠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일견 반어법처럼 보이는 이 제목을 통해, 최 PD는 ‘좋음’과 ‘나쁨’을 판가름할 기준이 무엇인지 묻는다.

▲ 최효진 PD
Q. 처음 프로그램 제목을 들었을 땐 ‘Mnet스럽다’고 느껴졌다. 통념상 누구보다 ‘굿걸’ 같지 않은 이들을 모아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배드 비취스’(Bad Bitches)라고 지을 순 없어서…. 하하. 농담이다. ‘쇼미더머니’를 연출하면서, 자신의 수만 가지 성격 중에 한가지 면만을 보여주고 탈락한 출연자들을 볼 때 무척 안타까웠다. 물론 시청자가 방송에 그만큼 많이 이입했다는 뜻이긴 하겠지만, 일부의 모습만으로 (한 사람을) 판단하고 멍에를 지우는 느낌이 들어 힘들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한 가지 성격만으로 존재하겠나. ‘굿’과 ‘배드’를 누가 판단할 것이며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그런 얘기도 하고 싶었다.”

Q. ‘굿걸’의 출연자들이 서로에 대한 편견을 허문 것처럼, 당신도 이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깨뜨린 편견이 있나.

“다들 색깔이 워낙 다르다 보니, 함께 만든 결과물이 미숙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출연자들도 자신을 많이 의심했다. 그런데 첫 무대부터 정말 잘 짜왔다. 섬세한 아이디어들을 또렷하게 구현했다. 게다가 회를 거듭할수록 이들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게 확연하게 보였다. ‘굿걸’을 시작하면서 출연자들 개개인이 가진 허들을 넘어서는 순간이 나오길 바랐는데, 그들이 스스로 알을 깨는 게 보여서 뿌듯했다.”

Q. 그래서, 시즌2를 기대해도 되는 건가.

“하하. 그건… 잘 모르겠다.”

Q. 나오고 싶어 하는 여성 음악인들이 많아졌을 것 같은데.

“그건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캐스팅 당시) 만나는 것조차 꺼린 아티스트도 있었고, 만나고 나서도 우려 섞인 시선을 가진 분들이 있었다. 방송을 보신 분들이 관점을 바꿔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주목할 만한 여성 음악인이 정말 많다. 성격도 다양하고. 그들이 더 많이 비춰지면 재밌지 않을까.”

wild37@kukinews.com / 사진=CJ ENM 제공, Mnet ‘굿걸’ 방송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