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진료가 필요하다 [기고]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신경과 박건우 교수

기사승인 2022-07-12 10: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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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진료가 필요하다 [기고]

오랫동안 치매와 파킨슨병 어르신들을 진료하여 왔다. 뇌에 발생하는 대표적 퇴행성 질환인 알츠하이머치매는 인지기능을, 파킨슨병은 운동기능을 서서히 무너뜨려 간다. 그래서인지 보호자들과도 잘 알고 지내며 환자치료에 유대를 가지게 된다.

“오늘도 어머님은 같이 안 오셨네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몸이 많이 안 좋으신 모양이에요. 오늘도 아버님은 못 오셨네요.”

보호자가 대신 약을 처방 받으러 오면 무심히 건네는 대화다. 

문제가 없으면 다행이다. 그런데 병을 가진 분을 간병하는 입장에서 편한 날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보호자 혹은 대리인은 환자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 따라 나는 처방도 하고 조언도 해 드린다. 

어느 날 이러한 상황이 나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과연 이러한 진료가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는 과정일까? 얼굴을 보지 못한지 1년이 지났는데, 보호자의 얼굴은 기억하는데 환자의 얼굴이 가물가물하다. 파킨슨병은 특히 운동이 얼마나 느려지고, 보행기능이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보호자의 설명으로는 매우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영양 상태는 어떠신지, 욕창은 잘 관리되고 있는지, 굳어져 가는 관절은 어느 정도의 운동범위를 보이는지……. 병원에 오면 알 수 있는 상황이지만 보호자나 대리인을 통해 듣는 정보는 아무래도 정확성이 떨어진다. 때론 보호자의 기억에 윤색과 과장이 더해지면 영 다른 방향으로 처방이 되는 경우를 많이 경험하게 된다. 보호자가 한마디 한다. “의사선생님이 집에 와서 저희 어머니를 보시면 좋을 텐데……. 어머니도 무척 보고 싶어 하세요.”

그래서 생각해본다. ‘분명 예전에 불편한 어르신을 위해 의사가 찾아간 시절이 있었는데’라고.

초고령화 사회에 곧 진입하며 노인성 질환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의료계는 급성기 환자에 대한 대응과 함께 노인질환에 대한 대응 방식을 또한 갖추어야 한다는 시대적 압력을 받고 있다. 노인성 질환의 특징은 인지 및 운동능력의 소실이다. 관절염, 노쇠 등으로 보행기능이 저하되어 있다면 병원에 어떻게 갈 수 있을까? 노인인구가 늘어나면 병원에 모시고 갈 사람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 뻔한데, 우리는 아직도 노인성질환 환자들을 병원에 오라고만 한다. 

의사가 집으로 가서 진료하는 것은 노인성 질환을 현장에서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여 불필요한 진료비를 줄이고, 병원까지 오게 하는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키며, 무엇보다 보호자를 통해 듣는 이야기보다 의사를 통해 듣는 조언과 격려가 환자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왜 방문 진료가 활성화되지 못하였을까? 의료법 제33조에 따르면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인은 ‘의료 기관 내’에서만 의료업을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부분이 방문 진료를 생각하는 의사 입장에서 약간 걸리는 부분이다. 그러나 의사가 응급환자를 진료하거나 환자, 환자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진료하는 경우, 환자가 있는 현장에서 진료를 해야 하는 부득이한 사유가 있으면 방문 진료가 가능하다는 예외규정이 있어 이 규정으로 활동한다면 법적인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런데 막상 방문 진료에 대한 진료비 수가가 책정되어 있지 않다. 나가서 진료하는 것은 가능하나 이로 인해 발생하는 수고에 대해서는 의료보험 수가의 지불 근거가 없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1차진료 의사들에 한하여 방문 진료 시범 사업이라는 편법으로 일부 방문진료를 허용하고 있다. 참여하는 의사도 많지 않을뿐더러, 각종 서비스에 대한 표준이 잡히지 않고, 의대생 교육과정에도 포함되지 않아, 지속가능성에 염려가 된다. 

의료 시스템은 몇몇의 자원봉사로 변화 될 수 없다. 노인의 운동성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 병원 아니 의사가 다가가야 한다. 오라 오라 하면서 건물 크게 짖는 병원 보다 찾아가기 쉬운 가벼운 병원도 필요한 시점이 온 것이다. 이에 대한 고민을 정부도 국민건강보험공단도, 국민들도 같이 하였으면 한다. 

이런 고민을 하니 친구가 한마디 하였다. “아니 그냥 진료 가방 가지고 집에 찾아가면 되는 것 아니냐? 네가 안 찾아가는 것이지 못 찾아간다고 변명하지 마라.” 
친구의 충고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래 나를 반기는 환자의 모습이 그리워 나는 갈거야. 그런데 내 후배들은 정당한 대우를 받는 재택의료 시스템에서 환자를 만나게 해 주고 싶어. 친구야 도와주라.”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