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웠어, 이 뜨거움…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쿡리뷰]

기사승인 2022-08-07 0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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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웠어, 이 뜨거움…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쿡리뷰]
2022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공연 중인 밴드 크라잉넛.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3년 만에 제자리를 찾은 록 페스티벌에 새로움은 필요하지 않았다. 익숙해서 그리웠던 열기와 재미가 인천 송도달빛문화축제를 뒤덮었다. 5일 이곳에서 막 올린 2022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얘기다.

“여러분, 너무 오랜만이죠? 3년 동안 이 록 페스티벌을 끊고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요!” 첫날 무대에 오른 홍대 터줏대감 밴드 크라잉넛이 말을 걸자 객석은 요동쳤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밤이 깊었네’ ‘좋지 아니한가’ ‘룩셈부르크’ 등 잇달아 울려 퍼지는 히트곡이 깊었던 갈증에 물을 적셨다. 순식간에 분위기를 달구는 크라잉넛의 기세는 대단했다. “룩, 룩, 룩셈부르크 / 아, 아, 아르헨티나♬” 크라잉넛이 이렇게 시동을 걸자 곳곳에 흩어졌던 관객들은 무대 앞 잔디밭으로 달렸다. 여기저기서 벌어진 뜀박질에 지축이 흔들리듯 바닥이 울렸다.

“(지난 3년이) 너무 긴 시간이었고, 답답하고 지루했다”는 크라잉넛은 “4개월 전만 해도 록 밴드가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거나 록 페스티벌을 여는 일은 미친 짓이었다. 오늘 그 미친 짓을 여러분과 해보려 한다”며 관객들 마음에 불을 붙였다. 이날 인천 일대 습도는 85%. 어항 속을 걷는 듯 축축한 날씨였지만 관객들은 개의치 않았다. 허공엔 ‘퇴사’ ‘건강하고 효도하자 내일부터’ ‘나락도 락(록)이다’라고 적힌 깃발이 바람에 나부꼈다. 내일 따윈 걱정 않는 록 애호가들의 열정도 깃발과 함께 춤을 췄다.

그리웠어, 이 뜨거움…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쿡리뷰]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공연 중인 밴드 잔나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2006년 시작해 한 해도 빠뜨리지 않고 열려온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쓴 뒤 곤경에 빠졌다. 록 페스티벌을 비롯한 대중음악 공연이 사실상 금지되면서다. 2020년과 2021년 온라인 중계로 공연을 내보냈지만 반응은 예년만 못했다. 주최 측이 올해 테마를 ‘리바이브’(Revive·부활)로 정한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비롯해 코로나19로 위축된 공연 문화 생태계를 재건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다시 관객을 눈앞에서 만나 감격하기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과 함께 성장한 밴드 잔나비도 마찬가지였다. 잔나비는 데뷔 직후인 2014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펜타슈퍼루키로 선정된 뒤 올해까지 다섯 차례 이 축제에 참여했다. 6일 메인 무대 서브 헤드라이너로 이름을 올린 이들은 “스무 살 때 가장 작은 무대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면서 “헤드라이너까지 한 팀 남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보컬 최정훈은 흡사 교주 같았다. 관객들을 쥐락펴락하며 호응을 유발했다. 공연 중반에는 스탠딩 구역으로 거대한 공을 날리는 등 화려한 무대 연출도 돋보였다.

그리웠어, 이 뜨거움…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쿡리뷰]
데뷔 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이날 ‘펜타포트 신고식’을 치른 팀도 있다. 싱어송라이터 이랑과 한국계 미국인 1인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가 그 주인공이다. “민중 가수가 록 페스티벌에 왔다”고 인사를 건넨 이랑은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음반상을 안겨준 정규 3집 수록곡 ‘늑대가 나타났다’ ‘환란의 시대’ 등을 합창단과 함께 들려줬다. 서울에서 미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는 “펜타포트, 안녕하세요”라고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암투병 중 세상을 떠난 엄마를 위한 곡 ‘더 보디 이즈 어 블레이드’(The Body Is a Blade)와 신보 수록곡 ‘파프리카’(Paprika) 등을 불렀다. 최근 내놓은 ‘비 스위트’(Be Sweet)를 부를 땐 같은 날 공연한 밴드 새소년 멤버 황소윤이 깜짝 등장했다.

이번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엔 매일 3만 명이 넘는 관객이 공연장을 찾은 것으로 추산됐다. 그룹 방탄소년단 리더 RM도 6일 공연을 보며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주최 측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입장객에게 발열 체크와 소독을 의무화했다. 마스크가 땀과 물 등에 젖을 경우에 대비해 갈아 끼울 마스크도 6만장 비치했다. 또 증상이 나타나는 관객은 별도 부스에서 자가키트로 검사하게 했고, 이 과정에서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엔 격리부스에 있도록 했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7일까지 이어진다. 이날 공연엔 밴드 자우림이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르고, 영국 밴드 모과이, JTBC ‘싱어게인1’ 우승자 이승윤, 가수 백예린이 소속된 밴드 더 발룬티어스 등이 출연한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