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기억될 아이유의 시간 [쿡리뷰]

기사승인 2022-09-19 06: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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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기억될 아이유의 시간 [쿡리뷰]
가수 아이유 콘서트 현장. 이담엔터테인먼트

18일 오후 6시20분, 해가 지기 시작한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낮게 깔린 구름에 주홍빛이 번졌다. 오후 7시, 석양이 한층 짙어지자 하늘은 벌겋게 물들었다. 가수 아이유는 이 마법 같은 시간을 노래에 붙들어 뒀다. “우리는 오렌지 태양 아래 / 그림자 없이 함께 춤을 춰” 그가 2년 전 발표한 노래 ‘에잇’을 무반주로 시작하자, 잠실벌은 순식간에 아이유와 팬들만의 “서로가 만든 작은 섬”(에잇 가사)으로 변했다.

아이유 단독 콘서트 ‘더 골든 아워(The Golden Hour) : 오렌지 태양 아래’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17·18일 이틀 간 열린 공연엔 관객 약 8만6000명이 모였다. 한국 여성 솔로 가수로는 가장 큰 규모로 여는 공연이다. 엄청난 관객 수에 마음이 벅찼던 걸까. 객석을 바라보는 아이유의 얼굴에서 시시때때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두 눈으로는 공연장 이쪽저쪽을 천천히 훑었다. 관객들 모습을 빠짐없이 눈에 담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영원히 기억될 아이유의 시간 [쿡리뷰]
아이유 콘서트 현장. 이담엔터테인먼트

관객들 역시 모든 순간에 간절히 집중했다. 아이유가 3년 만에 여는 공연이라서다. 체감 온도 31℃, 습도는 67%에 달하는 무더운 날씨에도 지칠 줄 모르고 거의 모든 곡에 ‘떼창’과 응원 구호를 넣었다. 특히 이날은 아이유 데뷔 14주년 기념일이라 아이유와 팬덤 유애나 모두에게 의미가 깊었다. 아이유는 공연에 앞서 14주년을 자축하며 ‘아이유애나’ 명의로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서울특별시아동복지협회 각각 1억원을 기부했다.

‘에잇’으로 시작해 ‘너의 의미’ ‘금요일에 만나요’ ‘내 손을 잡아’ ‘라일락’ ‘무릎’ ‘밤편지’로 이어지는 공연 구성에선 아이유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려는 야심이 엿보였다. 그는 “넌 흐린 어둠 사이 왼손으로 그린 별 하나”(노래 ‘셀러브리티’)라며 관객들을 위로하고, “아이 필 블룸”(I Feel Blooming·노래 ‘블루밍’)을 외치며 설렘을 전했다. 아이유가 “내 정체성에 가까운 노래”라고 설명한 ‘무릎’은 관객을 그의 깊은 내면으로 데려갔고, 히트곡 ‘밤편지’는 따뜻한 연서가 돼 관객들 마음을 어루만졌다.

영원히 기억될 아이유의 시간 [쿡리뷰]
아이유 콘서트 현장. 이담엔터테인먼트

공연은 한바탕 축제 같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을 도화지 삼아 아이유는 아낌없이 불꽃을 쏘아 올렸다. 앙코르 전 마지막 곡인 ‘너랑 나’를 부르기 전에는 드론으로 허공에 그림을 그렸다. 드론 한 대가 반딧불처럼 하늘로 떠오르더니 친구들을 불러 모아 아이유의 초상과 유애나 로고 등을 표현했다. 압권은 ‘스트로베리 문’(Strawberry Moon) 무대에 등장한 열기구였다. ‘딸기 달’을 형상화한 붉은 열기구가 노래에 맞춰 발광했고, 그 안에 사뿐히 올라탄 아이유는 “삶이 어떻게 더 완벽해”라고 노래하며 행복해했다.

이런 기운이 객석으로도 전염돼서일까. 앞으로 여는 공연에선 ‘팔레트’와 ‘좋은 날’을 부르지 않겠다는 말에도 관객들은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곡에 우렁찬 구호를 넣으며 최선을 다해 노래와 이별했다. 아이유는 “‘팔레트’를 만든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간인데, 요즘 그때만큼 좋은 순간들을 맞이하고 있어서”, 또 “더 재밌고 새로운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 두 곡을 공연에서 졸업시킨다고 했다. 음악 안에 새겨뒀던 시간을 원래의 자리로 흘려보내고 미래를 준비하는 아이유에게서 특유의 씩씩함이 묻어나왔다.

이날 아이유의 표정은 여러 번 변했다. 어떤 때는 긴장한 듯 무표정했고, 또 어떤 때는 신이 나서 웃었다. 노래에 깊이 빠질 때면 슬픈 듯한 표정도 지었다. 그리고 ‘시간의 바깥’을 부르고 난 그의 얼굴에, 마침내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아이유는 ‘감사하다’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든다. 공연장 맨 끝에 앉은 분의 사랑까지도 느낄 수 있다”면서 “더 겸손한 마음으로, 저를 응원해주는 여러분 마음이 어떤 건지 되새기면서 앞으로 14년 더 가보겠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