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영웅이라더니...간호사 77% “아파도 출근”

인권위, 간호사 1016명 설문조사
“코로나 업무로 본인·가족 차별받아” 30%
전문가, 간호사 인력·공공의료 강화 강조

기사승인 2022-10-28 16: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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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영웅이라더니...간호사 77% “아파도 출근”
서울 한 대학병원 병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등 감염병 위기 상황이 간호사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송두환)는 28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감염병 위기상황에서의 간호사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인권위는 지난 6월22일부터 7월21일까지 한달간 코로나 19 관련 업무에 참여한 간호사 총 1016명(보건소 282명, 의료기관 734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실시했다. 이 가운데 간호사 총 30명에 대해서는 개별 심층면담(화상, 전화, 대면)을 실시했다.

김형숙 순천향대 간호학과 교수가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간호사 1016명 중 598명(59.8%)은 코로나19 관련 업무 수행 중 규정된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다. 682명(67.1%)은 환자로부터 폭언, 폭행 등을 경험했다. 785명(77.3%)은 최근 12개월 동안 몸이 아픈데도 출근해 일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사들은 코로나19 대응 업무에서 힘들었던 점으로 ‘자주 변경되는 업무시스템’을 가장 많이 꼽았다. 코로나19 관련 업무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환자 및 보호자 민원, 환자의 격리 비협조, 정보 및 소통의 부족, 일방적 업무 투입 순으로 응답이 많았다.

코로나19 영웅이라더니...간호사 77% “아파도 출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송두환)는 28일 오후 2시 인권위에서 ‘감염병 위기상황에서의 간호사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정진용 기자

‘가실거죠?’ 한마디에…방광염·허리디스크 악화 겪어

전체 응답자 중 298명(29.3%)은 코로나19 관련 업무를 수행한다는 이유로 본인 또는 가족이 차별 또는 비난을 받은 경험이 있고, 207명(20.4%)은 부당하게 일상생활을 통제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코로나19 관련 업무를 수행하면서 이직 의사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 중 584명(57.5%)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면접 조사 중 나타난 인권 침해 사례를 살펴보면, 초기 업무 배치과정에서 자율성이 침해됐다는 답변이 나왔다. 독신인 간호사의 경우에는 “너는 어차피 집에 혼자 있고 결혼도 안 했고”라는 말을 들었고, 승진을 앞둔 이도 울며 겨자먹기로 코로나19 업무를 담당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관리자가 ‘가실 거죠?’라며 눈치를 줘서 거부할 기회도 없었다는 이도 있었다. 안전 교육도 없이, 방역물품 및 보호장구가 부족해 본인과 가족의 안전을 보장 받지 못했다는 토로도 이어졌다.

간호사들은 신체적 질병 발병 및 악화뿐 아니라 정신건강 문제에도 노출됐다. 방호복 착용에 따른 신체적 부담(근골격계 통증, 피부 문제, 탈수, 탈진)과 방광염, 수면장애, 대상포진, 과도한 체중 변화 및 허리디스크 악화를 겪었다는 답변이 나왔다. 정신건강 문제로는 임종도 지키지 못하는 가족의 고통, 상황에 떠밀려 비윤리적이거나 법을 위반하는 행위를 수행해야 하는 데 따른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팀원이나 동료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자책도 호소했다.

코로나19 영웅이라더니...간호사 77% “아파도 출근”
간호사들이 의료기관 내 간호사 배치기준 강화를 촉구하는 피켓팅을 진행하고 있다.   의료연대본부

“감염병 상황뿐 아니라 평상시 간호사 인권 존중·보호해야”

강경화 한림대학교 간호학과 교수는 간호사 인력확보 필요성과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의 지원과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 교수는 “의료현장에서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내용이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제12조에 있기는 하지만 의무 내용이 추상적이라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터 민주주의를 위한 거버넌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보건복지부에 ‘간호사노동환경개선위원회’를 신설하고 병원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체계에 노동자 참여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공공의료 강화가 곧 간호인력 확충과 연결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나백주 서울시립대학교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 같은 재난 상황에서의 과중한 업무부담 및 정신적 스트레스 증가는 평상시 부족한 인력으로 이뤄졌던 비정상적 의료전달체계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나 교수는 “수가 인상은 간호 인력 확충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간호 인력 확충을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은 전국의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병상당 간호인력 기준을 정립하고 선도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라며 “초기에 정부와 지자체 예산을 투입해 공공병원 적정인력 선도 사업을 전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간호인력이 너도나도 공공병원이 일하기 좋다는 인식을 갖고 민간병원이 이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해서 점차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윤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유행으로 기존 의료체계 내 간호사 노동에 대한 인권기반 접근의 부족 문제가 드러났다”면서 “이번 기회에 감염병 유행시기에 한정한 것이 아닌 일상적으로 간호사 인권을 존중, 보호, 실현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고 봤다.

이 연구위원은 △보건의료 인력법과 별개로 간호사 문제를 인권 기반으로 접근하는 법률 제정 △의료기관에 적절한 근로감독 △간호사 인권 보장 상황 이행 모니터를 위해 지표와 기준점 제시 △노동조합, 협회 등 평간호사 등의 구제책 마련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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