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삼성은 밀어붙였다. 그리고 불과 6개월 만에 국내 최초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에도 삼성은 업황이 악화될 때마다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일본 반도체 기업 엘피다가 다운사이클 속 투자 위축과 시장 변화 대응 실패로 무너질 때, 삼성은 미세공정 전환과 생산 확대를 이어갔다. 업황보다 다음 사이클을 먼저 본 투자였다. SK하이닉스 역시 외환위기와 채권단 관리 체제를 버티며 살아남았다. 지금의 한국 반도체 산업은 호황기의 환호보다, 어려웠던 시절 버텨낸 시간 위에 세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최근 삼성전자 노조를 둘러싼 성과급 논쟁을 보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현재 삼성전자 노조는 연간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며 오는 21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다. 시장 추정 영업이익 기준으로 45조원에 달하는 규모로, 지난해 연구개발비(약 37조원)를 뛰어 넘는 금액을 일회성 성과급으로 달라는 것이다.
노조의 요구 자체를 무조건 비난하기는 어렵다. 인공지능(AI) 열풍 속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노동자들이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반도체 산업이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동안 현장을 지켜온 이들도 결국 사람이다.
다만 반도체 산업의 속성을 생각하면 마냥 단순한 문제로 보기도 어렵다. 메모리 산업은 본래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을 반복하는 대표적 사이클 산업이었다. 호황기에 공격적으로 증설했다가 불황기에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는 일이 반복됐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도 결국 불황기에 투자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시장 분위기는 과거와 조금 다르다. AI 시대 들어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이 커지면서 메모리 산업의 성격 자체가 변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소수 기업 중심의 과점 구조가 굳어지며 과거식 ‘치킨게임’도 줄어들었다. 최근 메모리 업황은 예전보다 빠르게 반등했고, 불황의 골도 얕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이클 자체가 사라졌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지금의 호황 역시 AI 투자 확대와 메모리 공급 부족이 동시에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실제로 중국은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무서운 속도로 추격해오고 있다. 중국 양쯔메모리(YMTC)는 낸드 적층 경쟁에서 빠르게 따라붙고 있고, 창신메모리(CXMT) 역시 D램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금은 HBM에서 한국이 우위라는 평가가 많지만, 반도체 산업에서 기술 격차가 영원했던 적은 없었다.
반도체는 이제 기업 하나의 사업이 아니다. 한국 수출과 투자, 증시와 세수까지 흔들 만큼 경제 전체와 연결돼 있다. 지금 삼성의 성과급 논쟁이 그래서 더 복잡하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을 탐욕으로 규정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기업은 과거처럼 노동자의 희생만을 이야기할 수 없고, 노동 역시 현재의 호황만 바라보고 움직이기엔 산업의 변동성이 너무 크다. AI 시대 들어 시장 구조가 달라지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반도체 산업은 여전히 긴 사이클 위에서 움직인다. 지금의 호황 역시 언젠가는 지나간다. 결국 중요한 건 다음 다운사이클이 왔을 때도 삼성과 노동자들이 다시 함께 버틸 수 있느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