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8일 (5)
“술만 마셨는데 기억 끊겼다”…청년 노리는 ‘몰래 마약’ 범죄 [THE OVEN]

“술만 마셨는데 기억 끊겼다”…청년 노리는 ‘몰래 마약’ 범죄 [THE OVEN]

클럽·술자리 파고든 ‘퐁당’ 범죄…20~30대 여성 노려
“기억 끊겨도 신고 못 한다”…증거 부족·무고 우려에 피해 은폐
전문가들 “자리를 비웠다면 새 음료 주문…초기 대응 중요”

승인 2026-05-08 06:08:02
타인의 술이나 음료에 약물을 넣는 이른바 ‘퐁당’ 범죄가 국내에서도 잇따르면서 비자발적 마약 노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한 이미지로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타인의 술이나 음료에 약물을 넣는 이른바 ‘퐁당’ 범죄가 국내에서도 잇따르면서 비자발적 마약 노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한 이미지로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제가 저 사람과 함께 있었다고요?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요.”

20대 여성 A씨는 클럽에서 술을 마신 뒤 몇 시간의 기억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처음 보는 숙박업소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A씨는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숙박업소 CCTV를 확인했다. 영상 속 자신의 모습을 본 그는 충격에 빠졌다. 낯선 남성과 팔짱을 낀 채 웃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곧바로 경찰서를 찾아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이 권유한 약물 검사에서는 GHB 계열 약물 양성 반응이 나왔다. GHB는 중추신경을 억제해 기억 상실과 의식 저하를 유발하는 물질로, 국내에서는 흔히 ‘물뽕’으로 불린다.

상황을 되짚어보던 A씨는 화장실에 다녀온 뒤 자리에 남겨둔 생맥주를 다시 마셨고, 이후 의식을 잃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타인의 술이나 음료에 약물을 넣는 이른바 ‘퐁당’ 범죄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과거 유럽이나 미국에서 주로 발생하던 비자발적 마약 범죄는 이제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범죄가 성범죄 등 2차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주 피해 대상이 20~30대 여성이라는 점을 특징으로 꼽는다.

범죄에 주로 사용되는 약물로는 GHB 계열과 필로폰 계열 등이 거론된다. 필로폰은 체내에 일주일가량 남지만, GHB 계열 약물은 48시간 정도면 몸에서 빠져나가 흔적 확보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국마약회복협회에는 한 달에도 여러 차례 비슷한 피해 상담 전화가 걸려온다. 피해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약에 노출됐을 수 있다는 공포와 함께 성범죄 등 2차 피해 가능성에 대한 불안을 호소한다고 한다.

피해 사실을 인지한 이후에도 수사기관을 찾기까지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비자발적 마약 범죄 피해자들은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선뜻 수사기관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범인을 특정하더라도 증거 확보가 쉽지 않은 데다, 자칫 무고죄로 되레 고소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또 자신도 모르게 마약에 노출됐더라도 ‘마약사범으로 몰릴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피해 사실 자체를 드러내길 꺼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박진실 법무법인 진실 변호사는 “비자발적 마약 범죄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신고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범죄에 사용된 약물 상당수가 체내에서 빠르게 사라지기 때문에 신고를 망설이는 사이 증거 확보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자신이 마약사범으로 입건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크다”고 설명했다.

또 “범인을 특정하더라도 가해자가 피해자와 자연스럽게 숙박업소에 들어가는 장면 등을 남겨 ‘합의된 관계였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 때문에 피해자가 무고죄를 우려해 신고를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관련 범죄가 실제보다 드러나지 않는 이유 역시 이런 구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비자발적 마약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기본적인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술이나 음료를 둔 채 자리를 비우지 말고, 자리를 비웠다면 새 음료를 주문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설명이다. 낯선 사람이 건넨 술이나 음료는 마시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박영덕 한국마약회복협회 회장은 “비자발적 마약 범죄에 사용되는 약물은 대부분 맛이나 냄새로 알아차리기 어렵다”며 “낯선 사람이 건넨 술이나 음료는 마시지 말고, 자리를 비웠다면 새 음료를 주문하는 등 기본적인 경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피해가 의심될 경우 지체 없이 수사기관을 찾아 검사 등을 받아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박 회장은 “평소 주량과 다르게 기억이 끊기거나 심한 어지럼증이 나타났다면 단순한 음주 때문이라고 넘기지 말아야 한다”며 “즉시 경찰에 신고해 검사를 받고, 이후 전문가 상담 등을 통해 심리적 충격에 대한 도움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THE OVEN은 보도를 넘어, 사회 변화를 만들기 위해 쿠키뉴스와 브랜드가 함께하는 사회 공헌 프로젝트입니다. 첫 번째 프로젝트로 마약 검출 키트를 개발한 디엑스젠코리아와 함께 ‘청년 마약 노출 예방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관련 기사와 현장 기록은 THE OVEN 시리즈를 통해 이어집니다.]




이찬종 서명
이찬종 서명

이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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