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아 기분 안 나쁠 줄”...노인 두 번 울리는 성범죄

의사가 80대 여성 추행..지난해 60세 이상 대상 강간·강제추행 777건

기사승인 2021-12-30 17: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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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많아 기분 안 나쁠 줄”...노인 두 번 울리는 성범죄
그래픽=이희정 디자이너

노인 대상 성범죄가 늘고 있다. 피해자 연령 특성상 범죄 현황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29일 경기 하남시에서 한 의사가 80대 여성을 추행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범행 일자는 지난 3월로 전해졌다. 당시 의사는 환자에게 서비스해주겠다며 어깨를 주물러줬고,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가슴을 움켜잡았다고 한다.

피해 여성 A씨는 사건 이후 잠을 못 자 수면제를 먹을 정도로 충격이 컸지만, 두 달이 지난 후에야 가족들에게 알렸다. 가족들은 지난 7월 병원에 방문했다. 가족들이 항의하자 이 의사는 “나이가 많아 기분이 안 나쁠 줄 알았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 가족은 경찰 고소를 고려했지만, A씨가 피해 사실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해 미루고 있다고 전했다.

노인 대상 성범죄의 경우, 신고하더라도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지난 3월 경기 파주시에서 90대 여성 B씨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당시 목격자가 있었다. 피해자 옷에서 가해자의 DNA도 검출됐다. 경찰은 무혐의로 수사를 종결했다. B씨가 치매를 앓았고, 기타 증거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 남성이 주기적으로 무단 침입했다는 이의를 제기했고 재수사가 이뤄졌다.

노인 대상 성범죄는 매년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5~2019년 총 3442건의 노인 대상 성범죄가 발생했다. 5년 사이 범죄 건수가 44.2% 늘어났다. 강간·강제추행이 92.5%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60세 이상 노인 대상 성범죄 중 강간·강제추행만 777건으로 조사됐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노인 대상 성범죄 사례는 더 많다.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는 것에 부담감이나 수치심을 느껴 감추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승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여성 노인들의 경우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신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2차 피해나 낙인찍힐 우려도 다른 연령대에 비해 훨씬 큰 편”이라며 “범죄 사실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노인 대상 성범죄의 가장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또 “치매 등 신체적·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피해 인지가 둔하거나 진술 증거 효력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라고 밝혔다. 

전문가는 노인 대상 성범죄가 피해자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교육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박형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성 노인들이 피해자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면서 “노인 대상으로 피해자 권리에 관한 적극적인 교육이나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윤영 인턴기자 yuniejung@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