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배우 이제훈의 최근 출연작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 영화 ‘사냥의 시간’에서 갓 출소한 준석(이제훈)을 맞아주는 건 가족 같은 세 명의 친구들이었고, ‘도굴’에선 도굴 전문가들과 환상의 팀플레이를 자랑했다. 현재 방송 중인 SBS ‘모범택시’에서도 택시회사 무지개운수의 일원으로 악당들과 대치하고 있다. 지난 14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무브 투 헤븐’에서도 이제훈이 맡은 상구는 홀로 멋짐을 자랑하는 주인공이 아니다. 1회가 끝날 때쯤 극의 긴장감을 불어넣는 빌런 같은 존재감으로 등장해 유품정리사 그루(탕준상)과 함께 지내며 점차 성장해간다.
최근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만난 이제훈은 ‘무브 투 헤븐’을 “사람들이 어떻게 봐줄지 제일 많이 기대되고 떨리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고민도 길지 않았다. ‘사냥의 시간’을 작업하던 2019년 추석 연휴에 대본을 처음 읽고 곧바로 감독과 제작사 대표 미팅을 잡았다. 그렇게 이틀 만에 출연이 활정됐다. 이제훈은 이 작품을 함께한 걸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무브 투 헤븐’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감정적으로 많이 동요되고 공감도 됐어요. 눈물도 흘렸고요. 제가 읽은 경험과 그 마음이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될까 하는 궁금함이 있었죠. 제가 대본을 봤을 때의 느낌이 14일에 작품이 공개되고 보신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라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한편으로는 고생스럽게 찍은 작품인데, 이렇게 좋은 반응을 들으니까 진짜 기분이 좋았어요. 동시에 제가 이런 소중한 작품에 출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진짜 행운이자 감사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주일 중 6일을 웨이트 트레이닝, 3일을 복싱과 이종격투기 연습에 매진했다. 이제훈이 맡은 상구가 이종격투기 선수이기 때문이었다. 평소 “격한 운동에 취미도 특기도 없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몸관리는 꾸준히 해왔다. 오히려 “이렇게 에너지 넘치는 액션을 보여주는 작품을 하길 바랐고 기다렸다”고 했다. 상구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는 과정도 섬세했다.
“상구와 아스퍼거증후군이 있는 그루가 물과 기름 같이 티격태격하고 전혀 섞이지 않을 것 같았어요. 특히 상구는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안하무인에 함부로 말도 하잖아요. 그 지점이 상구가 ‘무브 투 헤븐’에 등장할 때 비호감처럼 보지 않을까 싶었고, 그렇게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순수하고 정직한 그루와 고인의 사정이 전달되는 과정을 통해서 상구가 영향을 받고 긍정적으로 바뀌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캐릭터를 만들어 갈 때 저를 더 과감하게 투영시킬 수 있었어요. 외적으로도 진짜 지저분하고 멋있지도 않게 하고 싶었어요. 상구가 그루와 대척점에 있는 이미지로 표현되면 보는 사람도 재밌고 저도 재밌게 즐기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이제훈은 배우로서 최근 작품을 선택하고 연기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했다. 과거엔 그가 맡은 캐릭터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작품을 함께하는 사람을 생각한다. 좋은 작품이란 결과와 함께 그 과정의 중요성도 깨달은 것이다.

“이전엔 제가 재밌고 흥미 있는 작품을 선택했어요. 그리고 캐릭터에 몰두하기 바빴죠. 뭔가 해내야 한다는 강박과 집착이 강했거든요. 그땐 연기만 잘하자는 생각이 강했다면 지금은 작품을 같이 만드는 사람들을 생각해요.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서 단순히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과 같이 호흡을 맞춰서 이끌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함께 하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느껴요. 제가 작품에 참여하면서 같이 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고 더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죠. 그렇게 좋은 작품이란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더 생긴 것 같아요.”
넓어진 시야는 작품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러 인물을 연기하면서 그 인물이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촘촘히 더듬으며 그와 함께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같이 시간을 보낸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그의 사회가 됐고 세상이 됐다. ‘무브 투 헤븐’도 그와 같은 관점으로 봤다.
“‘무브 투 헤븐’을 보고 많이 울었다는 반응을 봤어요. 유품정리사라는 직업 자체를 몰랐던 사람도 많더라고요. 저도 그런 직업군이 있다는 것만 알았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그들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마음과 자세로 직업에 임하는지 봤어요. 모든 직업에 귀천이 없지만 이 일은 참 특별하고 고귀하다고 생각했어요. 보신 분들이 드라마가 사연을 전달해주는 고인에 대한 메시지나 사연을 남겨진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는 대목에 공감이 많이 됐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제가 느낌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아서 그게 참 소중해요. 한편으로는 이 이야기가 10부로 끝나는 게 아쉬워요. 이 좋은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다른 에피소드로도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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