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5일 (4)
박열의사기념관, 16전투비행단 장병 방문…나라사랑 정신 되새겨

박열의사기념관, 16전투비행단 장병 방문…나라사랑 정신 되새겨

승인 2026-03-06 10: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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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제16전투비행단 장병 70여 명이 지난 5일 오후 박열의사기념관을 방문해 박열의사와 가네코 후미코 여사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박열의사기념관 제공.

박열의사기념사업회는 공군 제16전투비행단 장병 70여 명이 지난 5일 오후 박열의사기념관을 방문했다고 6일 밝혔다.

이날 장병들은 박열의사 추모의식, 전시관 관람, 가네코 후미코 묘소 참배 등의 일정을 소화하며 박열의사와 가네코 후미코 여사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문경 출신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박열의사는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 3·1 만세운동에 가담했으며,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아나키스트 항일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1926년 일왕 암살을 기도했다는 ‘대역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나, 22년 2개월이라는 독립운동가 가운데 최장기 옥고를 치렀다.

그는 특히 조사 과정에서 “일왕을 폭살하기 위해 폭탄을 구입하려 했다”고 당당하게 맞섰다. 

사형 판결이 나자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고 일괄하며 기개를 잃지 않았다.

이는 그가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 투쟁한 행동하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방이 되자 재일교포의 권익 신장을 위해 재일본조선거류민단을 조직해 단장(초대~5대)을 역임하는 등 민족운동에 헌신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온 그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인민군에 의해 북으로 압송되며 다시 고초를 겪게 된다.

납북 이후에도 그는 1956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 참여하며 자주적인 통일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평생을 조국평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한 그는 73세의 일기로 평양에서 숨을 거뒀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공군 제16전투비행단 정신전력교육담당 김주영 대위(진)는 “이번 방문을 통해 장병들이 나라사랑의 마음과 군인으로서의 자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며 “우리 장병들이 독립운동가분들의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슴에 새기고, 군 복무에 임할 수 있도록 적극 힘쓸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에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서원 이사장은 “우리 영공 수호에 매진하고 있는 공군 제16전투비행단 장병들의 기념관 방문에 감사드린다”며 “박열의사와 가네코 후미코 여사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가슴에 담고 국방의 의무를 완수하길 바란다”고 인사를 건넸다. 
서원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이 16전투비행단 장병에게 박열의사의 활약상을 설명하고 있다, 박열의사기념관 제공.
노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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