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문화기술대학원 이진준 교수가 길이 10m 한지 두루마리 형태로 제작한 박사논문 ‘Empty Garden’이 영국 최고(最古) 대학 박물관에 영구 소장된다.
이는 한국 현대 작가의 연구성과가 서구권의 공적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이례적인 사례다.
1683년 설립된 애쉬몰린박물관은 루브르 박물관보다 110년 앞선 세계 최초 대학 박물관으로, 서양 지성사의 출발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곳에서 생존 작가의 박사논문을 정식 구입해 컬렉션에 포함한 것은 매우 드물다.
이번 성과는 한국에서 출발한 예술·학문 연구가 서구 공적 지식 체계에서 장기 보존·연구 대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인공지능(AI) 이후 시대의 예술과 인문학 역할을 제시한 연구가 국제 공공지식의 장에서 지속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이 교수의 논문은 길이 10m에 달하는 한지 두루마리 형식으로 제작, 펼치며 이동해야 하는 구조로 설계돼 독자가 자연스럽게 거니는 경험을 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조선시대 문인들이 마음속에 그리던 ‘의원(意園)’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논문의 내용은 디지털 기술 환경 속에서 인간의 감각과 기억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특히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대신 정원을 가꾸듯 천천히 다루고 경험하는 방식으로, 속도와 효율 중심의 디지털 환경에 대한 대안적 접근인 ‘데이터 가드닝(data gardening)’ 개념을 제안했다.
이 교수는 논문 집필 당시 부상으로 휠체어 생활을 하며 움직임과 멈춤에 대한 사유를 심화했다.
2년 6개월 만에 완성된 이 논문은 2020년 옥스퍼드대학교 순수미술 박사 심사에서 ‘수정 없음’ 판정을 받으며 옥스퍼드에서도 드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또 일반적으로 박사논문은 보들리언 도서관에 보관되지만, 이 논문은 애쉬몰린박물관이 별도의 심의를 거쳐 예술·학술적 가치를 인정하고 직접 구입했다.
애쉬몰린박물관의 중국·한국 미술 담당 큐레이터인 셸라그 베인커 교수는 “이 작품은 재료와 기법, 그리고 문화적·지적 깊이 측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며 “다양한 공간 경험을 제시하는 복합적 구성”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AI 시대에도 예술은 비물질적 이미지에만 머물 수 없다”며 “인간이 몸으로 경험하고 사유하는 감각 체계를 제안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구 지성사의 대표적 박물관에 보관됨으로써 동양적 사유가 AI 시대의 새로운 기준으로 지속적으로 읽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교수는 현재 옥스퍼드대 엑시터 칼리지 방문교수, 뉴욕대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예술·기술·인문학 융합연구를 수행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