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8일 (6)
“환자만 많이 보는 구조로는 바이오헬스 경쟁력 한계”…의사과학자 발굴 나선다

“환자만 많이 보는 구조로는 바이오헬스 경쟁력 한계”…의사과학자 발굴 나선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 20년간 의사과학자 100인 선정
의사들 환자 보고 연구까지…“개인 갈아 넣기”
장기간 안정적 연구 중요…“지속 가능한 지원 필요”

승인 2026-07-16 09: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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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열린 ‘의사과학자 100인 선정 사업’ 기자간담회에서 사업 소개를 하고 있다. 신대현 기자
한상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열린 ‘의사과학자 100인 선정 사업’ 기자간담회에서 사업 소개를 하고 있다. 신대현 기자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진료에 편중된 의료체계를 개선하고, 의사과학자가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환자 진료 실적을 중심으로 의사를 평가하는 현행 의료체계와 병원 문화를 개선하지 않으면 우수한 임상 경험이 연구와 산업화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상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가진 ‘의사과학자 100인 선정 사업’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임상 의사와 기초과학계의 연결 고리가 사실상 끊어져 있다”며 “바이오헬스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임상의사와 기초의학자, 생명과학자, 공학자가 지속적으로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과학자는 의료 면허를 가지고 있으면서 의학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는 과학자를 말한다. 한 마디로 환자를 진료하면서 동시에 연구 현장에서 새로운 치료법과 기술을 발굴하는 의사인 것이다. 국내 의사과학자 중 약 25%는 기초의학계, 60%는 임상 분야에서 연구중심교수로 활동 중이다. 이 중 제약바이오 산업계에 몸담은 의사과학자는 10~15%로 추정된다.

한 원장은 정부가 반도체와 양자컴퓨터, 조선 등 이공계 산업 육성 정책을 먼저 내놓은 것과 비교해 바이오헬스 산업에 대한 정책적 메시지가 늦었다고 평가했다. 의정 갈등 이후 정부가 의료계에 대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하면서도, 이후 정부가 바이오헬스를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점에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 데이터와 인공지능 분야에서 이미 크게 앞서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단순히 ‘AI 3대 강국’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바이오헬스 분야에서도 우리만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임상 현장의 경험이 연구개발과 산업화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원장은 우수한 인재가 의과대학에 진학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들이 진료뿐 아니라 연구와 산업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진로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대에 우수한 인력이 몰린다고 비판하지만, 정작 의사가 된 뒤에는 환자를 많이 보는 일에만 집중하도록 만든 것이 현재의 의료 시스템”이라며 “우수한 인력이 의대에 진학한 뒤 기초의학과 자연과학, 공학 분야 연구자들과 협력해 새로운 성과를 낼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짚었다.

의사들이 연구나 산업계와의 협업에 참여하기 어려운 가장 큰 원인으로는 진료량 중심의 보상체계와 병원 문화를 꼽았다. 한 원장은 “우리나라 임상의학계에선 환자를 많이 봐야 명의라는 평가를 받고, 대학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며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의 생명과학자와 공학자들이 임상의사에게 아이디어를 구하고 싶어도 의사를 만나기가 어렵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서도 의사들과 일정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을 정도로 임상의들이 진료에 묶여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구조에서 기초연구 성과를 실제 환자 치료에 적용하는 ‘벤치 투 베드사이드’와 임상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를 연구실로 가져가는 ‘베드사이드 투 벤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 한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임상에서 실제로 필요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임상의사와 기초과학자의 연결이 회복돼야 생명과학과 생명공학 분야의 연구 성과가 새로운 치료법과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피력했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도 언급했다. 미국 의사 역시 업무가 많지만, 전문간호사 등 진료지원 인력이 잘 갖춰져 있고,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대규모 연구비 지원을 통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다는 설명이다.

한 원장은 “미국은 국가가 중요한 지점을 전략적으로 지원하고, 그 위에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자본이 결합하면서 선순환이 만들어진다”며 “의사도 일부 임상을 수행하면서 연구비를 기반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일본도 우리나라보다 임상의사가 담당하는 환자 수가 적고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잘 마련돼 있다”면서 “우리나라 의사과학자들은 환자를 모두 진료한 뒤 추가로 연구까지 하는, 말 그대로 ‘개인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원장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정책 수단으로 정부의 연구중심병원 사업과 의사과학자 양성사업을 꼽았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정부와 관련 기관의 지원을 바탕으로 우수 의사과학자를 발굴하고, 이들의 연구 업적과 사회적 기여를 알리는 사업을 추진한다. 의사과학자뿐 아니라 의대에서 기초의학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들을 위한 기초의학상도 마련했다.

박현영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의학연구기반강화특별위원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열린 ‘의사과학자 100인 선정 사업’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신대현 기자
박현영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의학연구기반강화특별위원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열린 ‘의사과학자 100인 선정 사업’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신대현 기자
한림원은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의사과학자 100인을 선정하는 국가 프로젝트에 착수, 올해 처음으로 ‘대한민국 의사과학자상’과 ‘우수 의사과학자상’을 공모한다. 한림원은 앞으로 20년 동안 매년 5명씩 의사과학자를 선정해 미래 세대 의사들에게 연구의 비전과 롤모델을 제시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시상은 연구경력에 따라 두 부문으로 운영된다. ‘대한민국 의사과학자상’은 연구 경력 15년 이상으로 국내 의학 발전과 국민건강 향상에 크게 기여한 대표 연구자 1명에게 수여한다. 상금 2억원과 상패가 주어진다. ‘우수 의사과학자상’은 연구 경력 10년 이상으로 미래 성장 가능성과 혁신성을 갖춘 차세대 연구자 4명에게 주어진다. 상금 각 1억원씩과 상패가 수여된다.

후보자는 대학 총장·학장, 병원장, 연구기관장, 학회장 등의 기관 추천 또는 관련 전문가 2인 이상의 개인 추천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공모 접수는 지난 6일 개시돼 오는 8월14일까지 접수받는다. 서면평가, 심층평가, 운영위원회 심의, 공개검증을 거쳐 최종 수상자를 선정한다.

한 원장은 “의사과학자상은 단순히 상금을 주고 끝나는 상이 돼서는 안 된다”며 “수상자가 의과학계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후배 연구자에게 새로운 진로와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짚었다.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도 이뤄진다. 김희정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사과학자정책팀장은 정부가 지난 2019년부터 의사과학자 양성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학부생부터 박사 후 연구자, 독립 연구자까지 이어지는 지원체계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가 연구개발사업이 3년 또는 5년 단위로 편성되고, 유사·중복사업 조정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연구자들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연구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했다.

김 팀장은 “미국의 NIH 의사과학자 프로그램은 1960년대부터 60년 이상 지속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연구개발 과제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일이 반복돼 왔다”며 “의사과학자는 정답이 없는 문제에 도전하고 실패를 거듭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연구지원 시스템은 연구자를 정해진 틀 안에 가두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복지부도 이 같은 한계를 인식하고 있으며, 지속 가능한 지원방식을 찾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며 “전공의가 수련 과정에서도 연구를 중단하지 않을 수 있는 제도와 연구 경력의 단절을 막는 방안도 관련 기관들과 함께 논의하고 있어 연구할 수 있는 의사가 늘어나면 결국 새로운 치료법 개발과 환자 치료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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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 제약바이오 이슈를 쉽고 균형 있게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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