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전압만으로 원하는 단일 분자의 양자 상태를 정밀 제어하는 기술을 최초로 구현했다.
IBS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양자나노과학연구단장팀과 독일 카를스루에공과대(KIT) 필립 윌케 교수팀은 전압으로 단일 분자의 양자 상태를 제어하는 새로운 원리를 규명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기존 자기장 방식의 한계를 넘어 전압만으로 개별 큐비트를 선택적으로 조절함으로써 분자 기반 양자컴퓨터와 양자정보처리 기술의 핵심 난제를 해결할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양자컴퓨터의 정보를 저장하는 단위인 양자비트(큐비트)는 일반 컴퓨터의 0과 1 대신 여러 상태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어 훨씬 복잡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원자와 분자 가운데 원하는 큐비트 하나만 정확하게 제어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지금까지는 자기장을 이용해 스핀을 조절하는 방법이 주로 쓰였지만, 자기장은 주변까지 함께 영향을 미쳐 특정 큐비트만 선택적으로 제어하기 쉽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전압으로 해결했다.
산화마그네슘 표면 위에 철 프탈로시아닌(FePc) 단일 분자와 철 원자가 결합한 분자 복합체를 제작하고, 주사터널링현미경(STM)과 전자스핀공명(ESR)을 결합한 ESR-STM을 이용해 개별 분자의 양자 상태를 원자 수준에서 관측했다.
STM은 뾰족한 금속 탐침을 시료 표면 가까이에 접근시켜 원자 하나까지 관찰하는 장비다.
전자스핀공명은 전자의 스핀 상태가 특정 주파수의 전자기파와 공명하는 현상을 이용해 양자 상태를 측정하는 기술이다.
연구팀은 실험에서 탐침에 가하는 전압만 높여도 분자의 스핀 공명주파수가 크게 변하는 현상을 확인했다.
특히 일정 전압을 넘어서자 공명 주파수는 전압에 비례해 조금씩 증가하지 않고 특정 구간에서 급격하게 변했다.
이 같은 비선형 스핀-전기 결합 효과는 지금까지 보고된 분자 스핀의 전기적 제어 효과보다 약 30배 큰 변화였다.
연구팀은 이런 현상의 원인이 탐침과 분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교환 상호작용’임을 밝혔다.
교환 상호작용은 가까운 전자들의 스핀이 서로 영향을 주는 양자역학적 현상이다.
전압이 높아질수록 탐침과 분자 사이의 교환 상호작용이 강해지고, 그 결과 분자의 스핀 에너지가 변하면서 공명 주파수도 함께 바뀌는 원리다.
연구팀은 이론 모델을 구축해 실험 결과와 계산 결과가 실제 측정값과 일치함을 확인했다.
아울러 이 원리가 실제 양자 제어에도 활용되는지 검증했다.
분자 복합체에서 양자 상태를 주기적으로 바꾸는 라비진동(Rabi oscillation)을 측정한 결과 자기장이나 마이크로파를 변경하지 않고 전압만 조절해 공명 조건을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는 직류 전기 신호만으로 양자 상태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 연구팀은 두 개 분자 복합체를 연결한 2-스핀 시스템에서 탐침 아래에 있는 스핀만 공명 조건을 바꿀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는 다른 스핀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아 여러 큐비트가 집적된 양자소자에서도 원하는 큐비트만 선택적으로 제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이번 연구는 원자를 하나씩 조립하는 바텀업 방식의 양자 시스템에서 직류 전기 신호만으로 양자 상태를 제어한 첫 실험 사례다.
연구팀은 5년 이상 이어진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단일 분자에서 전자스핀공명을 구현한 기존 연구를 발전시켜 직류 전기 신호만으로 양자 상태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을 완성했다.
특히 극저온·초고진공 환경에서 수행하는 복잡한 ESR-STM 실험과 새로운 이론 개발을 결합해 이번 성과를 이끌었다.
이를 통해 기존 압전 효과 기반 방식과 달리 분자의 구조를 변형하지 않아도 다양한 분자와 고체 스핀 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는 범용 제어 기술이 될 가능성을 확인했다.
크리스토프 울프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 연구위원은 “여러 큐비트가 연결된 환경에서도 원하는 큐비트만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분자 기반 양자소자와 양자정보처리 기술을 구현하는 핵심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지난달 29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에 게재됐다.
(논문명: Exchange-mediated spin–electric control of single molecules on surfaces)
이재형 기자 jh@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