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달라”…‘만 5세 취학’ 폭염도 이긴 외침들

교육부 뒤늦은 공론화에…“시간 끌기”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반대 서명 20만명 넘어

기사승인 2022-08-03 17: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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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달라”…‘만 5세 취학’ 폭염도 이긴 외침들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열린 '만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 릴레이 집회'에서 어린이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교육부가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하향하는 방안에 대해 뒤늦게 공론화에 나선 가운데 반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교원·학부모단체들이 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열린 ‘만 5세 초등 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기자회견에서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학제 개편안 철회를 요구했다. 

지난 1일부터 시작돼 3일째를 맞은 이날 집회에도 많은 인파가 모였다. 무더운 날씨에도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집회를 찾은 학부모들도 적지 않았다. 

2019년생 막내 아이를 포함해 세 자녀를 둔 A씨는 “동갑이라도 아이마다 발달 속도에 차이가 있다. 아이마다 태어난 기질이 다르고 개월 수 차이가 나면 그만큼 발달이 다르게 나타난다”며 “학교에 가면 화장실도 혼자 가야 하고 식판도 혼자 들어야 한다. 교사가 다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A씨는 “책상 크기가 작아지고 교실이 조금 넓어지는 게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이 아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달라”며 “(박 장관이) 공정한 출발 때문이라고 하는데 왜 공정한 출발이 만 5세 초등 입학 때부터여야 하나. 아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 전까지는 방치하다 왜 만5세부터 평등한 출발선을 운운하나. 벌써 사교육 관련 종목 주가 다 올라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만5세 자녀와 함께 전북 전주에서부터 왔다는 B씨도 “이 아이가 당장 초등학교에 간다고 생각하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됐다”며 “큰 아이를 키워보니 초등 1학년 때 아이가 학교에서 40분을 앉아있는 다는게 쉽지 않더라”라고 지적했다. 

20대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유치원 교사 임용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C씨는 “정말 말도 안 된다”며 “만 5세 초등 취학은 아이의 발달 과정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해 이 자리에 나왔다”다고 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유아교육디자인연구소 김연진 소장은 “놀이 중심 교육과정이 아직 안착은 안 됐지만 잘 진행되고 있는데 지금 시점에서 이것이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교과 중심의 수업 제도에서 아이들이 잘 수용할 수 있을 지 우려 된다”며 “아이들이 (학교에) 잘 올라갈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를 마련하는게 책임론. 그러한 책임론에 대한 내용은 빠져있고 제도화로 조금 더 일찍 공교육화를 하는 게, 아이들을 오랫동안 기관에 남겨놓는게 누구를 위한 건지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계속 나왔다. 지난달 말부터 맘카페 등을 통해 공유되고 있는 범국민연대의 만 5세 취학 철회 촉구 서명 운동에는 이날 오후 12시 기준 20만명을 넘겼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달라”…‘만 5세 취학’ 폭염도 이긴 외침들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열린 '만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 릴레이 집회'에서 만5세 취학 즉각 철회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이날 범국민연대는 입학 연령 하향 반대에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를 거쳐 추진방향을 결정하고, “국민이 원하지 않는 정책은 폐기할 수도 있다”며 철회 가능성을 언급한 것을 두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단체는 “형식적인 의견 수렴을 받아 (정책을) 시간 끌어 밀어붙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공론화는 찬반 의견이 팽팽할 때 각각의 의견을 내세워 시민들의 투표를 거치는 방식인데 학부모·교원 등 98%가 동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날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강 의원에 따르면 지난 1~3일 13만1070명의 학생·학부모·교원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7.9%가 이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들은 또 교육부가 만 5세 입학 하향을 추진하면서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은 채 설익은 정책을 내놓았다고 날을 세웠다. 

이 단체는 전날 ‘국가책임교육 강화를 위한 학부모 간담회’에서 박 장관이 “정책 추진 과정에서 학부모, 학생,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고 한 부분을 지적했다. 이어 “학생은 어떤 대상으로 조사를 할 것인가. 3~4세를 대상으로 할 것이냐”며 “문제가 제기되니 12년에 걸쳐 한다고 하고,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고. 동네 가게에서도 이렇게 (운영)하진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박 장관은) 초등 1학년 교실에 가보았느냐. (아이디어를 내기 전에) 최소한 아동발달 단계에 관해 공부를 하고, 유치원·학교를 찾아가서 아이들의 특성을 보고, 교육 전문가들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현장을 찾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만 5세 초등학교 취학은 초등학교 1학년뿐만 아니라 2~6학년, 중·고등, 대학교까지 교육과정 전체를 다 바꿔야 하는 문제”라면서 “사실상 교육과정을 바꾸는 학제 개편 문제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부분과 연관돼 있다. (교육부 장관) 혼자 생각해서 자랑하려고 보고하고 아무 생각없이 (윤 대통령이) 신속하게 추진하라고 결정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교육부는 내달 대국민 수요조사를 시작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날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일각에서 제기되는 폐기 가능성에 대해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이라며 “이제부터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부가 공론화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시민사회의 반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범국민연대는 오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책 추진 철회를 요구하는 긴급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5일까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진행 중인 릴레이 집회도 계속된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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