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 성향 단체 ‘리박스쿨’이 서울 시내 공립초등학교 방과후 프로그램인 ‘늘봄학교’에 강사를 파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교육계에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해당 단체가 대선 당시 조직적인 댓글 공작에 관여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며, 단순한 프로그램 외주 공급을 넘어 정치 편향과 역사 왜곡 교육이 초등학교 현장에 침투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논란은 지난달 31일 탐사보도 매체 ‘뉴스타파’ 보도에서 시작됐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리박스쿨은 ‘자유손가락 군대(자손군)’라는 이름의 온라인 댓글단을 운영하며 특정 후보를 띄우고 경쟁 후보를 조직적으로 비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대선을 앞두고 사전 댓글 문안과 계정을 준비해 ‘조장·조원’ 체계를 구축, SNS와 포털 뉴스 댓글창에서 여론 조작을 벌였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 과정에서 운영된 ‘자손군’ 일부 인물이 리박스쿨이 자체 발급한 민간 자격증을 통해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 강사로 참여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사안은 교육계로 번졌다. 리박스쿨은 ‘창의체험활동지도사’라는 자격증을 자체 발급하고, 이 자격증을 취득한 인원을 ‘늘봄’ 프로그램 강사로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박스쿨이 초등학교 ‘늘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경로는 서울교대를 통한 간접 공급 방식이었다. 교육부 산하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공모한 콘텐츠 지원사업에 서울교대가 선정됐고, 이후 서울교대가 ‘한국늘봄교육연합회’가 제안한 과학·예술 프로그램을 받아들여 관련 수업이 서울 시내 10개 초등학교에 제공됐다. 리박스쿨은 이 연합회를 실질적으로 운영한 단체로 알려졌다.
해당 프로그램은 ‘두근두근 신나는 실험과학’과 ‘오감으로 느끼는 그림책’ 등 일반적인 교육 콘텐츠로 포장됐으나, 내부 연수 과정에서 정치적 편향과 보수적 역사관이 포함됐다는 제보도 나왔다. 뉴스타파는 리박스쿨 내부 단체 채팅방에서 ‘댓글 지시’ 관련 발언이 오갔고, 연수 과정 중 ‘이승만·박정희 중심의 역사교육’ 등 왜곡된 역사관이 전달됐다고 보도했다.
교육 당국은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교육부는 1일 리박스쿨 대표 손효숙씨를 교육정책자문위원직에서 해촉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손 대표의 자문위 활동이 두드러지진 않았고, 최근 워크숍에 참석한 정도”라면서도 민감한 사안임을 고려해 조기 해촉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서울시교육청도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위법 사항이 확인되면 강력히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대체 프로그램도 신속히 마련해 학생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도 했다. 시교육청은 별도 브리핑을 통해 서울지역 초등학교에 도입된 ‘늘봄’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전수 점검에도 착수했다.

서울교대는 리박스쿨과의 협력설을 전면 부인했다. 서울교대 측은 “‘리박스쿨’이라는 단체의 실체를 알지 못하며, 해당 단체와 MOU나 협약을 맺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또 “한국늘봄교육연합회와는 일부 교육 콘텐츠 운영에 한정된 약정을 체결했을 뿐”이라며, 정치적 의도와 무관하게 교육 목적만을 기준으로 프로그램을 선정해 왔다고 해명했다. 향후에도 관련 업체 관리에 더욱 철저를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민간 자격증을 발급하는 단체가 학교 강사로 연결될 수 있었던 구조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현재는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민간 강사에 대해 정치·이념적 편향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미비하다는 점에서 제도적 허점이 사안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논란이 커지자 리박스쿨 측은 유튜브 채널 ‘리박스쿨TV’의 모든 콘텐츠를 비공개로 전환하고, 카카오톡 및 블로그 등 온라인 활동 흔적도 대부분 삭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식 입장문에서는 “이재명 후보 측의 정치적 프레임 조작과 언론 왜곡 보도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댓글은 공화주의 정치철학에서 말하는 공론장”이라고 주장했다.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과거 리박스쿨 홍보 영상에 등장한 데다, 당 차원의 행사에 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한 정황도 확인되면서 정치적 책임 공방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리박스쿨 사태는 단순한 보수 성향 교육단체의 일탈이 아니라 공교육 시스템의 빈틈을 드러낸 사례라는 점에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 교수는 “현재는 방과후 프로그램 강사로 참여하려면 기본 자격 요건만 충족하면 되는 구조로, 단체의 성격이나 이념적 편향 여부는 별도 검증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리박스쿨 사례처럼 정치적 또는 종교적 편향성을 가진 단체가 공교육 현장에 개입할 경우, 자칫 학생들에게 특정 정치 성향이나 반사회적 이념을 주입할 수 있어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런 점을 고려해 방과후 강사 활동 시 지켜야 할 원칙을 명확히 정하고, 정치·종교적 중립성과 같은 기준을 문서화해 안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검증 책임을 각 학교에만 맡기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교육청 차원에서 1차 감사와 검증 인력 풀을 구성하고, 민간 강사 등록 시 단체 성격이나 활동 내역에 대한 관련 서류를 제출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