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1억 원이 투입되는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 사업은 “현장 의견을 반영한 모범 공공 프로젝트”를 표방해 왔다. 그러나 추진 10년을 되짚어 보면, 실수요자인 어민과 시장 운영 주체의 목소리는 번번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절차를 지켰다’는 행정의 주장 뒤에는 "회의는 있었지만, 실질 협의는 없었다"는 현장의 탄식만 남았다.
10년 흐름으로 본 ‘현장 배제’의 고착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 사업은 2014년 12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공약으로 확정되며 물꼬를 텄다. 2015년 5월 서병수 시장이 어시장과 협약을 맺으며 첫 삽을 뜨는 듯했지만, 같은 해 12월 이미 대체시설과 주요시설 10여 항목이 빠진 ‘반쪽짜리 계획’이 드러났다.
2016년 기재부 적정성 검토, 2018년 조달청 재검토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현장 요구는 설계도에서 사라진 채 설계만 강행됐다.
2019년 오거돈 시장은 ‘공영화 카드’를 꺼냈지만 2021년 무산됐고, 같은 해 박형준 시장·안병길 의원·정연송 조합장(현 공동어시장 사장) 간 합의로 사업은 재가동됐다.
당시 정연송 조합장이 2025년 다시 공동어시장 대표이사로 선출되어 히스토리를 아는 인물이 다시 이 사업에 합류된 것이 아이러니 하다.
그러나 2021년 12월 ‘B안’이라 불린 축소안이 등장하면서 위판장·대체시설·임대공간 등이 대폭 줄었다. 2022년부터는 “어시장 의견 반영 땐 지연”이라는 이유로 협의조차 닫혔다.
2024년 어시장이 317건 보완안을 제출했지만 “반영 불가” 통보만 돌아왔고, 2025년에도 수산 전문가 심사위원·현장 설명 요청이 모두 거부됐다.
10년에 걸친 행정 절차는 ‘현장 배제’를 점점 제도화하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어시장 관계자들은 협의체를 '자료 배포형 설명회'라 부른다. 안건은 사전 공유되지 않았고, 반대 의견은 기록에서 사라졌다.
정연송 대표는 “회의록만 보면 우리가 수긍한 듯 보이지만 실제론 사후 통보가 전부”라고 일갈했다.

‘비공개’와 ‘생략’… 반복된 내부 결정
부산시는 "법적 절차를 충실히 이행했다"지만, 공동어시장에서 확보한 일부 회의록엔 '세부 내용은 공모 전 비공개'라는 문구가 반복된다.
회의록이 없는 날짜도 있었다.
수산업계 관계자는 "참석은 했어도 결정 과정엔 못 끼었다"며 "우리 요구를 들은 척만 했다"고 비판했다.
부산대 도시공학과 A 교수는 "의견수렴을 ‘척’만 하고 반영하지 않으면 민주적 절차가 아닌 요식행위라며, 참여의 형식화, 책임 회피의 방패로 작용 할 뿐" 이라며 협의 구조 전면 개편을 주문했다.
부산시는 7월 초 시공사 선정·하반기 착공을 고수하며 지속적으로 어시장측과 협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어시장 측은 "실질적 재협의 없이는 협조 불가"를 선언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예산이나 도면이 아니라 ‘신뢰 회복’의 설계다.
현장을 배제한 공공사업은 결국 현장에서 외면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