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60년 넘게 ‘평화국가’ 기조를 유지해 온 일본이 살상무기 수출 금지라는 족쇄를 벗어던지며 글로벌 방산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일본 정부가 ‘방위장비 이전 3원칙’ 운용지침을 전면 개정하고 자국 방위산업을 국가 핵심 전략 수출 산업으로 육성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함에 따라, 그간 방산 시장을 주도해온 ‘K-방산’과의 전례 없는 각축전이 예고된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 달 살상 능력을 갖춘 완제품 무기 수출을 허용하는 개정안을 확정하고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 일본과 방위장비 이전 협정을 맺은 17개국을 주요 공략 대상으로 설정했다. 이에 국내 해양 방산 기업들은 함정과 항공기 분야에서 탄탄한 기술력을 보유한 일본의 참전이 단순히 제도적 변화를 넘어 시장 내에서의 실체적 위협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 방산 공세의 핵심은 단순 무기 판매를 넘어선 ‘패키지형 안보 협력’ 전략에 있다. 일본은 공적개발원조(ODA)와 정부안보원조(OSA)를 무기 수출과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해양 안보 협력 및 미·일 연합훈련, 기술 이전 등을 패키지로 묶어 국가 차원의 전략 수출을 추진할 수 있다.
장원준 전북대 첨단방산학과 교수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중국 견제가 시급한 동남아 연안 국가들 입장에서는 일본이 제공하는 포괄적인 안보 협력 패키지가 한국의 단품 위주 수출보다 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해양 방산 시장에서 일본의 ‘모가미급 호위함’은 우리 함정 수출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꼽힌다. 해당 함정은 미 해군 체계와의 높은 상호운용성을 갖고 있다. 미국이 동맹국 간의 장비 호환성을 강조하는 추세에 따라, 일부 국가들이 가격 경쟁력보다는 미국 무기 체계와의 유기적 연결성을 중시해 일본 함정을 선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은 지난해 호주의 차기 호위함 도입 사업(SEA 3000)에서 ‘모가미급’ 11척 수주에 성공했다. 총 사업 규모는 약 150억 호주 달러(약 14조원)에 달하며, 이는 한국 방산의 2024년 전체 수주액(약 13조원)을 단일 사업 한 건으로 뛰어넘는 수준이다.
모가미급 호위함이 승조원을 대폭 줄인 자동화 기술과 고도화된 대잠전 능력을 갖췄다는 점 역시 위협 요소로 꼽힌다. 일반적인 5000톤(t)급 호위함이 150~200명의 승조원을 필요로 하는 반면, 모가미급은 90명만 탑승한다. 미국 국방 전문 매체 Defense Security Monitor 등에서는 사업 초기부터 호주 해군의 극심한 병력 충원난에 시달리고 있음을 지적하며, 사업 선정의 주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 분석한 바 있다.
여기에 K-방산의 대표 강점으로 꼽혀온 가격 경쟁력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방산은 오랜 수출 금지로 인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해 발생한 ‘고비용 구조’와 ‘실전 데이터 부족’이라는 고질적 약점을 안고 있어 K-방산의 가격 경쟁력이 주요한 무기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 일본 방산업계가 함정 설계 및 건조 단계부터 인공지능(AI)과 스마트 공정을 전면 도입하며 원가 절감을 도모하고 있어 이마저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최근 군함 건조의 대세는 팩토리 오토메이션(Factory Automation)과 스마트 공정”이라며 “설계 단계부터 AI를 비롯한 다양한 스마트 공법이 도입됨에 따라 (일본 방산업계도) 과거에 비해 인력 효율성이 높아지고 원가 절감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제도적 측면에서도 한국은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일본은 미국과 상호국방조달협정(RDPA)을 체결한 28번째 국가로서 자국 선박을 자국에서만 건조하게 하는 미국의 ’존스법(Jones Act)‘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RDPA를 체결하지 못해 미국 시장 진출 시 현지 공장을 직접 인수하거나 설립해야 하는 막대한 비용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격차는 국내 방산 생태계의 낙수 효과를 제한하고 가격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K-방산의 ‘가격 경쟁력’과 ‘실전 운용성’, ‘납기 준수 능력’은 여전히 강력한 경쟁 우위로 평가된다. 한국은 폴란드와 중동 등지에서 입증된 세계 최고 수준의 납기 준수 능력과 거대한 대량 생산 체계를 이미 확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방산 시장의 핵심 가치가 단순 고성능보다는 ‘신속한 공급과 입증된 실전 운용성’으로 이동한 만큼, 우리 기업들이 축적한 양산 레퍼런스와 후속 군수 지원 인프라는 단기간에 일본이 따라잡기 힘든 경쟁 우위 요소다. 가격 경쟁력 또한 일본의 AI 및 스마트 공정 도입이 완전한 체질 개선까지 이어지기에는 시차가 존재하기에 여전히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K-방산이 이 같은 시차를 활용해 단순 ‘가성비’를 넘어선 ‘초격차 생태계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AI 기반 무인 체계와 유무인 복합전투체계(MUM-T) 등 차세대 기술을 선점하는 동시에, 향후 수십 년간 안정적 수익 창출이 가능한 MRO(유지·보수·정비) 시장까지 전략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방산 경쟁이 이제 단순 무기 판매를 넘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후 관리까지 포함한 ‘토털 솔루션 경쟁’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일본은 미국과의 RDPA 체결 등을 통해 이미 우리보다 유리한 고지에서 강력한 적수로 부상했다”며 “이제는 전차나 함정 몇 대를 파는 일시적인 실적에 도취될 것이 아니라, 거대 경쟁국에 맞서 국가 차원의 고도화된 방산 수출 전략과 R&D 기술 지원 체계를 원점에서 재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