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를 넘어 AI 시대다. AI 강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의 가장 근간이 되는 투표 행위가 ‘종이 부족’으로 멈췄다.
6·3 지방선거 당일, 전국 50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바닥났다. 정부는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을 지시했고, 선관위는 대국민 사과문을 냈다.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는 약 35시간 실랑이 끝에 경찰 기동대가 투입돼 간신히 투표함 반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선거철마다 투표용지 관리와 유권자 확인 과정에서 문제가 반복되면서 블록체인 기반 전자투표 시스템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블록체인은 이러한 신뢰 문제를 기술로 풀기 위해 고안된 시스템이다. 한번 기록된 데이터는 수정이 불가능하고, 모든 거래는 분산된 네트워크에 동시에 기록된다. 특정 주체가 결과를 조작하려면 전 세계에 분산된 수많은 노드를 동시에 해킹해야 한다.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해외에서는 이미 실전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 디지털 강국으로 꼽히는 에스토니아는 2005년 세계 최초로 전국 단위 전자투표를 도입했다. 두 개의 블록체인으로 유권자 등록과 투표 내용을 분리 저장해 익명성을 보장한다. 에스토니아는 인구 약 130만명 규모 국가지만 스카이프(Skype), 와이즈(Wise), 볼트(Bolt) 등 글로벌 스타트업을 배출한 대표적인 창업 강국으로 평가받는다.
선진국 도입 사례도 있다. 미국 유타주는 2019년 시범을 거쳐 2020년 대통령선거에서 블록체인 투표를 실제 활용했다. 미국·스페인·호주도 각종 선거에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 투표를 도입하고 있다.
국내 학계도 같은 방향을 주시하고 있다. 성균관대 미래정책연구원 윤왕희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학술지 선거연구에 게재한 논문에서 “블록체인의 뛰어난 보안성으로 외부 해킹을 통한 투표조작이 불가능하며, 공정성·검증성·강요저항성 등이 장점”이라고 분석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등 주요 정당이 2016년부터 10년 가까이 중앙선관위의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투표 시스템 ‘K-Voting’을 당내 경선에 실제 활용해왔으며, 이 기간 투표 조작이나 부정선거에 대한 공식 문제제기나 소송 사례는 없었다.
블록체인은 이미 선거 밖에서도 신뢰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한컴위드는 실물 금과 1대1로 연동되는 골드 토큰 ‘OXAU’를 출시하며 실물자산 토큰화(RWA) 시장에 진입했다. 현실 세계의 자산을 블록체인으로 증명하고 거래하는 구조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신호다.
글로벌 디지털자산 거래소 OKX는 국내 코인원, 한국투자증권과 손잡으며 기관 대상 사업 확장에 나섰다. 보안 체계와 리스크 관리 노하우를 국내 제도권 금융과 접목하겠다는 포석이다. 투표·금융·자산 거래까지, 블록체인이 신뢰를 요구하는 모든 영역으로 스며들고 있다.
블록체인 게임 플랫폼 넥써쓰(NEXUS)는 2025년 7월 정보보호 국제표준 ISO/IEC 27001·27701 인증을 취득했다. 자사 플랫폼 크로쓰(CROSS)의 메인넷 업그레이드를 위한 거버넌스 투표에서는 약 98%의 찬성률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글로벌 블록체인 보안 전문 기업 서틱(CertiK)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독립 검증자(밸리데이터)로 참여시키며 네트워크 신뢰 체계를 외부로 개방했다.
장현국 넥써쓰 대표는 “보안과 프라이버시는 절대 희생할 수 없다”면서 “자사 비즈니스 전반에 걸쳐 사전 예방과 사후 대응 모두를 아우르는 최첨단 보안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는 “신뢰는 실행으로 쌓인다”는 말도 덧붙였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블록체인을 ‘신뢰의 기계(The Trust Machine)’라 불렀다. 글로벌 블록체인 시장은 올해 137억 달러(21조897억8000만원) 규모에서 10년 내 1600억 달러(246조3040억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도 신한카드·두나무·빗썸 등 금융권을 비롯해 자산 거래, 게임 플랫폼까지 산업 전반에서 블록체인을 향한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