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4일 (2)
한류 파도 탔지만 엔진 부족…K패션의 진짜 경쟁력은 어디에 [K의 시간②]

한류 파도 탔지만 엔진 부족…K패션의 진짜 경쟁력은 어디에 [K의 시간②]

한류가 연 글로벌 시장, K패션의 다음 시험대
‘반짝 흥행’ 넘어 오래 살아남는 브랜드 경쟁
디자인·제조·AI·운영 역량이 새 경쟁력으로

승인 2026-07-09 06: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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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은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의 옷을 만들어 수출하는 생산기지였습니다. 지금은 젠틀몬스터와 마뗑킴 등 자체 브랜드를 앞세워 세계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단계로 성장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K’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산업 경쟁력과 기업들의 도전이 만든 결과입니다. ‘K의 시간’ 시리즈는 생산 경쟁력을 기반으로 성장한 한국 산업이 어떻게 글로벌 브랜드를 키워내는 산업으로 진화했는지 살펴보고, 세계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과제를 짚어봅니다.

무신사의 신진 브랜드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한 K패션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들. K패션의 다음 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심하연 기자
무신사의 신진 브랜드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한 K패션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들. K패션의 다음 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심하연 기자
K패션이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한류와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해외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는 성공했지만, 업계에서는 지금부터가 진짜 경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디자인 경쟁력과 산업 생태계, 글로벌 운영 역량을 함께 갖추지 못하면 ‘반짝 흥행’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2월 열린 2025 F/W 서울패션위크에는 23개국에서 해외 바이어 99명이 참가해 총 754만달러 규모의 수주 상담을 진행했다. 정부도 올해 글로벌 브랜드 육성 사업에 46억원을 투입하며 K패션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꾸준히 흥행 중인 K컬처 역시 K패션의 성장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24 한류백서’는 K패션을 K팝과 K드라마에 이어 독립적인 한류 산업으로 평가했다. 해외한류실태조사에서도 한류 콘텐츠를 접한 뒤 한국 패션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66.2%로 나타났다. 다만 구매 접근성 부족과 사이즈 다양성, 가격 부담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혔다.

다만 해외에서 주목받는 것과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김하빈 한양대학교 연구조교수는 국내외 패션 브랜드 18곳, 약 1만장의 상품 이미지를 생성형 AI로 분석한 결과 한국 브랜드만의 뚜렷한 디자인 군집은 형성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AI는 브랜드 로고와 이름을 제외하면 한국 브랜드와 해외 브랜드를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연구조교수는 이를 두고 K패션의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라기보다 지금까지 한류와 디지털 플랫폼, 브랜딩 전략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구조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한국만의 디자인 언어와 브랜드 정체성을 축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가장 시급한 과제로 ‘산업 생태계’를 꼽는다. K패션은 개별 브랜드의 성공 사례는 늘고 있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키워낼 수 있는 구조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K뷰티가 ODM 기업과 브랜드, 유통 플랫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산업 전체가 성장하는 구조를 만든 것과 달리, K패션은 브랜드 하나가 생산과 물류, 투자, 해외 유통, 현지 운영까지 대부분 감당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윤순민 비에파 대표는 올해 초 열린 ‘K-패션 글로벌화 정책 토론회’에서 “브랜드 경쟁력은 제조 경쟁력이 뒷받침될 때 지속될 수 있다”며 제조 기반과 산업 생태계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AI와 디지털 전환(DX), 친환경 생산체계, 제조 혁신 등을 중심으로 한 섬유패션산업 경쟁력 강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브랜드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를 오래 운영하는 능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 시장에서는 제품 경쟁력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고, 현지 유통망과 물류, 재고 관리, 고객 서비스, 반복 구매를 이끌어낼 브랜드 운영 역량까지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소재 백화점에서 시민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소재 백화점에서 시민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스케일업 정책 보고서에서 창업 단계보다 성장 단계 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K패션 역시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장 가능성이 확인된 브랜드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글로벌 시장의 경쟁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맥킨지와 비즈니스오브패션(BoF)이 공동 발간한 ‘State of Fashion 2026’은 글로벌 패션기업들이 신규 고객 확보보다 기존 고객 유지(리텐션)를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단기적인 유행이나 가격 경쟁보다 브랜드 가치와 고객 경험을 통해 소비자와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기업이 앞으로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젠틀몬스터는 안경 판매를 넘어 플래그십 스토어와 전시, 향수 브랜드 ‘탬버린즈’, 디저트 브랜드 ‘누데이크’ 등을 통해 브랜드 경험을 확장하고 있다. 제품보다 브랜드를 먼저 경험하게 하는 전략으로 글로벌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K패션은 이미 세계 시장의 관심을 받는 데는 성공했다”며 “이제 경쟁은 누가 먼저 해외에 진출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오래 살아남느냐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디자인이나 마케팅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제조 경쟁력과 글로벌 운영 역량,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키울 수 있는 산업 생태계까지 함께 갖춰져야 K패션도 진정한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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