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9일 (6)
유가 하락에도 살얼음판…호르무즈 봉쇄 ‘불씨’ 여전

유가 하락에도 살얼음판…호르무즈 봉쇄 ‘불씨’ 여전

승인 2026-05-06 18:29:05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국제유가가 미국과 이란의 휴전 연장 소식에 배럴당 100달러대 초반으로 내려앉으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여전히 살얼음판 위에 서 있다는 평가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지정학적 불안이 여전한 데다, 유가 재급등이 국내외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란과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합의를 향해 큰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 선박 호위 작전인 ‘프로젝트 프리덤(Project Freedom)’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파키스탄과 다른 국가들의 요청, 그리고 이란과의 협상에서 상당한 진전이 이뤄진 점을 고려한 결정”이라면서도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는 완전한 효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대이란 군사작전의 목표 달성을 선언한 데 이어, 미국이 선제적으로 군사 압박 수위를 낮추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미국의 메시지가 나오기 전까지 금융시장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선반영했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한국 선박이 피격되고, 이란이 아랍에미리트(UAE) 정유시설을 공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휴전 파기’ 우려가 커졌다. 브렌트유 가격은 한때 배럴당 110달러 중반까지 뛰었다.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통행 제한이 확대될 경우 공급망이 마비될 수 있다는 공포가 시장을 짓눌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의 유효성을 재확인하며 프로젝트 프리덤 중단을 선언하자, 유가는 급락세로 돌아섰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6월물 선물은 전장 대비 3~4% 하락한 배럴당 102달러 안팎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7월물도 4% 가까이 내려 약 110달러 선을 기록했다.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누그러지면서 뉴욕 증시와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반등했다. 달러 인덱스(DXY)는 98선으로 내려앉았다. 유로화·파운드화 등 주요 통화는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이며 ‘강달러·원자재 고점’ 흐름을 일부 되돌렸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다만 시장에선 이번 되돌림을 ‘끝난 위기’로 보기엔 이르다는 관측이 나온다. 고유가·고금리 공포가 해소됐다기보다 과도한 공포 프라이싱을 일부 되감는 과정에 가깝다는 평가다. 미국의 해상 봉쇄가 유지되고 이란도 에너지 인프라 공격을 이어가는 등 군사·경제적 압박은 멈추지 않고 있어서다. 뉴욕타임스(NYT)는 “핵합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이란의 미사일·드론 전력도 상당 부분 남아 있다”며 군사 작전의 완전한 종식을 속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원유 수급 측면에서도 불안은 남아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S&P 글로벌 에너지 자료를 인용해 4월 한 달간 전 세계 원유 재고가 약 2억 배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하루로 환산하면 약 660만 배럴이 시장에서 사라진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특수 상황을 제외하면 역대 최대 수준의 감소 속도다. 짐 버크하드 S&P 원유 리서치 책임자는 “지금까지는 아시아가 재고 감소의 직격탄을 맞았지만, 미국 재고까지 빠르게 줄어드는 시점이 오면 시장 전체에 통제 불능의 경고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시장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CNBC에 따르면 4일(현지시간)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는 5.021%를 돌파했다. 월가가 사실상 시장이 견딜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보는 5%를 넘어선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마이클 하넷 최고투자전략가는 이달 초 보고서에서 “30년물 금리 5% 돌파는 ‘파멸(doom)의 문’이 열리는 신호”라고 경고했다. 30년물 금리는 주택담보대출과 우량 회사채 금리의 기준이 된다. 이 수준에서 금리가 고착되면 가계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폭등해 경기 침체를 유발한다.

국내 물가 압력 역시 높아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4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9.37(2020년=100)로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했다. 이는 2024년 7월(2.6%) 이후 최대 폭 상승이다. 한국은행 역시 석유류 가격의 기저효과를 이유로 물가 상방 위험을 경계하고 있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는 이날 “석유류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농축수산물 가격이 반등하면 5월 물가 상승 폭이 확대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시장에선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원유 재고 급감이 해소되지 않는 한 유가와 금융시장, 물가 변동성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지욱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월부터 3% 내외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며 “근원물가 상승률은 유가 상승이 시차를 두고 반영되며 7월부터 2%대 중후반 수준에 진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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