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1일 (1)
보이스피싱 잡자고 ‘감형 카드’ 꺼냈지만…피해 회복 빠진 수사협조 논란

보이스피싱 잡자고 ‘감형 카드’ 꺼냈지만…피해 회복 빠진 수사협조 논란

“우두머리 검거 위해 필요” vs “피해 회복 없는 감형 안 돼”
정부·검찰은 도입 긍정적…법조계선 위증·허위진술 우려
“국가가 범죄자와 거래하나”…피해자 공감대 부족 지적

승인 2026-05-11 06:00:03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수사에 협조하면 형을 줄여주는 법안이 국회에서 추진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피해자 상당수가 피해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에서 조직 검거 협조를 이유로 가해자 형량부터 낮춰주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다. 특히 형사 처벌 감면이라는 민감한 사안을 두고도 피해자 단체 의견 수렴이나 공청회 없이 입법 논의가 추진되면서 “수사 편의를 위해 가해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총책 잡기 위해 필요”…정부는 도입 긍정적

10일 국회 및 금융권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가담자가 수사·재판 과정에서 다른 공범 범죄를 밝히는 진술이나 증언, 자료 제출, 범인 검거·범죄수익 제보 등을 할 경우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오는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이른바 ‘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플리바게닝)’ 도입 법안이다.

법안 취지는 조직형 범죄 대응 강화다.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는 해외 거점과 점조직 구조를 기반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다단계·폐쇄형 구조로 운영되는 특성상 조직 내부자 협조 없이는 총책 검거가 쉽지 않다는 판단도 깔렸다. 범죄 조직 추적이 어려워지는 사이 피해 규모도 커졌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1조2500억원을 넘어섰다. 피해 규모가 1조원을 돌파한 것은 2006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정부 역시 제도 도입에 긍정적이다. 대검찰청은 범정부 보이스피싱 근절 종합대책에서 ‘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 도입 계획을 밝혔고, 법무부도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한 실증적 수사 단서를 신속히 확보해 엄단하려는 입법 취지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냈다. 금융위원회 역시 내부 가담자의 정보 제공을 토대로 신속하고 실효적인 단속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제도 도입 필요성을 인정했다.

“돈도 못 돌려받는데”…피해자들 반발

다만 현장 반응은 엇갈린다. 피해 회복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해자 감형부터 논의하는 것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다.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범인을 얼마나 세게 처벌하느냐보다 피해금을 얼마나 돌려받을 수 있느냐가 더 절실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수사 협조가 실제 피해 환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제도가 결국 ‘수사기관 실적을 위한 거래’처럼 비칠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이나 가상자산 범죄는 구조상 상선을 잡기 어려워 내부 제보를 유도할 필요성은 있다”면서도 “이미 검거된 사람이 공범 정보를 불었다는 이유만으로 형을 줄여주는 건 피해 회복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 협조를 이유로 감형하려면 최소한 피해 회복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피해자들이 돌려받는 금액은 많지 않다. 은행권과 제2금융권은 ‘비대면 금융사고 책임분담기준’에 따라 일부 피해를 자율 보상하고 있지만, 피해자가 속아 직접 송금한 경우는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은행권은 2024년 1월부터 2025년 4월까지 2244건 상담과 433건 피해 신청을 접수했지만 실제 배상은 41명, 1억6891만원에 그쳤다. 신청 대비 보상 비율은 피해금 기준 약 18% 수준이다.

물론 보이스피싱 피해를 금융회사가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보상하도록 하는 법안 역시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보상 한도는 최대 5000만원이 거론된다. 금융위원회는 1000만원 이상 5000만원 이하 범위에서 구체적 기준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피해자 과실과 허위 신청까지 금융사가 책임져야 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면서 논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5000만원 초과 피해는 전체 피해자의 14.8% 수준이지만 피해액 비중은 65.2%에 달해 현행 논의만으로는 고액 피해 구제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담합 리니언시와는 다르다?…“결이 다른 문제”

플리바게닝은 국내에서도 일부 분야에서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공정거래법상 담합 사건의 ‘리니언시(leniency)’ 제도가 있다. 담합 기업이 자진 신고하면 과징금과 시정조치가 감면되고 형사 고발도 면제된다. 내부 고발을 유도해 담합 적발에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본시장법 역시 일부 범죄에 대해 수사 협조 시 형벌 감면 규정을 두고 있다.

다만 이번 논의는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담합 사건은 내부자가 말하지 않으면 범죄 자체를 포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반면 보이스피싱은 이미 검거된 조직원이 추가 진술을 하는 구조에 가깝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리니언시는 범죄 자체를 드러내기 위해 자진신고를 유도하는 제도”라며 “이번 논의는 이미 잡힌 조직원이 추가 진술을 하면 형을 줄여주는 방식이라 결이 다르다”고 말했다.

법조계 시각도 엇갈린다. 사건 적체를 줄일 현실적 수단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진술 강요나 허위 진술 유도 등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점조직 특성상 단순 전달책과 핵심 조직원 구분이 어려운 만큼 처벌을 줄이기 위해 책임을 떠넘기거나 선택적으로 진술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미국 등 해외에서도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형사 사건의 90% 이상이 플리바게닝으로 종결되지만, 감형을 조건으로 증언을 확보하는 구조가 위증 위험을 키운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공청회 없이 추진…“국가가 범죄자와 거래하나”
 
더 큰 문제는 절차적 정당성 논란이다. 형사 처벌 감면이라는 민감한 제도를 두고도 공청회나 공개 토론이 사실상 없었던 데다, 보이스피싱 피해자 단체 의견 수렴 여부도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어서다. 상당수 피해자들은 법안 추진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수사 역량보다 진술 협조에 의존하는 구조가 돼선 안 된다”며 “협조 감면보다 비협조 행위에 대한 가중 처벌과 범죄수익 환수 강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명호 국회 수석전문위원 역시 검토보고서에서 “수사 효율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가해자가 수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만으로 형벌이 감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법정의 및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며 “보이스피싱 범죄 특성에 따른 필요성과 형평성 논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보이스피싱이 국민 불안과 직결된 대표적 민생 범죄인 만큼 사회적 수용성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피해자 공감대 없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국가가 범죄자와 거래한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면서도 “원칙적으로 보면 사법 정의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 개혁이 진행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시기상조로 볼 여지도 있다”고 했다.
김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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