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3일 (3)
‘교생실습’ 김민하 감독 “야구 볼배합 같은 호러블리 코미디, 변화구 승부 택했죠” [쿠키인터뷰]

‘교생실습’ 김민하 감독 “야구 볼배합 같은 호러블리 코미디, 변화구 승부 택했죠” [쿠키인터뷰]

영화 ‘교생실습’ 김민하 감독 인터뷰

승인 2026-05-13 06:00:13
김민하 감독.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김민하 감독.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깔깔 웃다가도 잊어선 안 될 아픔을 예상치 못한 맥락에서 물 흐르듯 짚어내니 종종 생각에 잠긴다.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웃기지만 결코 우습지 않다. 볼수록 ‘어라, 큰 그림이었잖아? (이토록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제법 설득력 있게 그린) 감독 대체 누구지’ 하며 감탄하게 된다. 이 영화는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속편인 ‘교생실습’, 이 감독은 김민하 감독이다. 최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작품과 똑 닮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꾸 웃다가 울었다. 문자 그대로다. 그는 영화의 출발점인 ‘무너진 교권에 대한 슬픔’을 언급하던 중 처음 눈시울을 붉혔다.

“제 단편 영화 중 ‘버거송 챌린지’가 2023년 교육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됐어요. 그래서 GV를 하러 갔죠. 그런데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다 검은 옷을 입고 계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서이초 선생님 49재가 있고 공교육 멈춤의 날을 선포한 주간이었던 거예요. ‘버거송 챌린지’는 반장이 햄버거 돌릴 돈이 없어서 가족과 버거송 챌린지에 나가는 이야기인데요. 가난한 반장의 꿈을 꿋꿋하게 지켜주는 담임 선생님이 나와요. 영화를 본 선생님들이 위로받았다고 고맙다며 우시는 거예요. 그때 기사로만 접하던 무너진 교권이 확 와닿았어요. 꼭 이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생각했죠.”

‘교생실습’은 수능 귀신에 맞서 죽음의 모의고사를 치르는 열혈 MZ 교생 은경(한선화)과 흑마술 동아리 소녀들의 성장기다. 빌런은 400살 먹은 일본 요괴 이다이나시(유선호)다. 이다이나시는 학생들에게 영혼을 바치게 하는 대신 정답을 볼 수 있는 눈을 준다. 거래는 이다이나시가 학생들의 명찰을 뺏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전국 1등을 놓치지 않는 흑마술 동아리 회원 아오이(홍예지), 리코(이여름), 하루카(이화원)의 이름이 일본어인 이유다. 쉽고 단순한 서사지만 김민하 감독의 의도는 가볍지 않았다. 교권 붕괴는 물론, 일제강점기 서당사냥·창씨개명, 비대해진 사교육 시장까지 도합 세 가지 슬픔을 그리고 싶었다는 전언이다. 김 감독은 또 한 번 눈가를 훔치며 설명을 이어갔다.

“교육기관이 어떻게 무너졌을지 생각하다가 서당 시절이 떠올랐고 ‘서당은 어떻게 없어진 거지’라는 물음에 다다랐어요. 그때까진 자연스럽게 없어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일본이 우리 말과 우리 정신을 말살하려고 할 때 독립군 훈장들이 수십만 명 학동들을 교육하고 있었고, 서당의 위험성을 인지한 일본이 토벌을 시작했는데 그 작전명이 ‘서당사냥’이었다는 거예요. 몰랐던 저 자신한테 화가 났고 부끄러웠어요. 또 비슷한 시기에 학원가를 산책하다 픽업 차량과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을 봤어요. 문득 ‘이 시간에 학원을 안 다니는 친구들은 어디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돼줘야 하는데 가진 자들의 자녀들은 더 배우고 가지지 못한 자녀들은 배우지 못하는 구조가 된 거예요. 사교육 시장이 세졌기 때문에 공교육이 힘을 잃어가는 거고요. 이 슬픔들을 꼭 담고 싶었어요.”

하지만 슬픈 영화는 아니다. 장르부터 그렇다. 자칭 ‘하이스쿨 호러블리 코미디’ 되시겠다. 건장한 체격의 남고 출신 남자 감독이 어쩌다 여고를 배경으로 한 호러 러블리 코미디에 꽂힌 걸까. 앞서 김민하 감독은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시리즈를 5편까지 구상해 놓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유는 명료했다. ‘여고괴담’ 뉴 제너레이션을 이어가는 것이 김 감독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선배 감독님들께서 ‘여고괴담’ 시리즈를 만들어주셨잖아요. 제가 이 시리즈를 이어보고 싶었던 게 시작이었어요. 선배님들의 ‘여고괴담’ 시리즈와 차이점이 있다면 ‘여고생들이 귀신을 만나 죽는다’라는 공식을 ‘여고생들이 귀신을 만나 이긴다’로 바꾼 거예요. 앞으로 만들 속편에서도 역시 여고생들이 이길 거예요. 또 저는 산에 있는 남고를 나왔어요. 여자 선생님들도 얼마 안 계셨었어요. 그 선생님들이 퇴근하시면 진짜 그 산에 남자들밖에 없는 거예요. 덥다고 속옷만 입고 다니고…. 귀신이 나오면 어떨지 상상이 안 되더라고요. 다만 제가 여고 생활을 해보지 않았으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여성 스태프분들이나 배우분들한테 제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나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계속 물어보면서 시나리오를 다듬어 갔어요.”







영화 ‘교생실습’ 스틸.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교생실습’ 스틸.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극중 은경이 이다이나시를 만나려면 (국어·영어·수리가 아닌) 언어·수리·외국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김민하 감독은 이 과정을 도트 그래픽 게임 형식으로 친근하게 안내하며 ‘호러블리’ 장르의 키치함까지 잡았다. 모두 김 감독의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학교 다닐 때 항상 모의고사가 산 넘어 산처럼 느껴졌었어요. 그리고 저는 그 게임에서 늘 패배자라고 생각했고요. 왜 게임을 맨날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자동으로 로그인되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1층에는 1교시 언어 귀신을, 2층에는 2교시 수리 귀신을, 3층에는 3교시 외국어 귀신을 배치했고 게임으로 설명하려고 했어요. 부족한 예산을 커버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제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세팅해 봤습니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신파는 안 돼’라는 대사가 은경의 입을 빌려 여러 차례 등장한다. 김민하 감독의 시그니처이자 이스터 에그(Easter Egg)다. 하지만 어쩐지 현실 악령, 아니 악령 같은 현실을 퇴치하는 마법 소녀의 주문처럼 들려 눈물이 왈칵 날 것도 같다. 김 감독은 이러한 평에 ‘코미디에는 시대의 슬픔이 있어야 한다’는, 자신만의 철학으로 화답했다. 명도가 낮은 호러지만 발랄함이 뚜렷하고, 개연성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짜임새가 촘촘하며, 분명 코미디지만 때때로 비극이 엿보이는, 그야말로 아이러니 결정체인 영화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짐작이 갔다.

“코미디가 외피지만 시대의 슬픔을 가지고 방향성을 잡으려고 했어요. 톤은 이 이상으로 가벼워지면 슬픔을 희화화하는 것밖엔 안 된다고 판단했어요. 신파 영화도 필요하고 저 역시 좋아해요. 하지만 코미디를 보는 입장에선 이미 세상 사는 것 자체가 힘들고 눈물 나거든요. ‘어차피 이 슬픈 시대에 개연성 있게 눈물까지 흘리진 말자’고 생각했어요. 영화로 그 슬픔들을 되치기해 보고 싶었고요. 코미디의 호흡은 야구에 빗대면 볼 배합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투수가 무조건 직구만 던지면 상대 타자가 다 치잖아요. 그래서 상대를 헷갈리게 만들려고 일부러 여러 가지 공을 던지는 거고요. 기존 호러가 직구라면 저는 관객이 싱겁다고 생각할 때쯤 높은 공을 던지고 관객은 웃으면서 배트 한 번 휘두르고, 공이 빠진 줄 알았는데 한복판으로 똑 떨어지고, 그렇게 변화구로 아웃카운트를 올려가는 거죠. 결정구도 있어야 할 테고요(웃음).”
심언경 기자
신속하고 정확한 기사를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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