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3일 (3)
[금진호의 AI, 사람을 향하다] AI 시대의 장례문화는 어떻게 바뀔까? 

[금진호의 AI, 사람을 향하다] AI 시대의 장례문화는 어떻게 바뀔까? 

금진호 목원대학교 겸임교수/인간 중심 AI 저자

승인 2026-05-13 10:03:34
금진호 목원대학교 겸임교수/인간 중심 AI 저자
금진호 목원대학교 겸임교수/인간 중심 AI 저자

며칠 전 필자는 형제 중 한 사람의 장례를 치렀다. 너무 일찍 소천하였기에 그 놀라움과 황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멀리서도 조문하고, 애도하는 사람들. 80을 바라보는 친구의 마지막을 위해 조용히 참석해 준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을 맞이한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은 그 마지막 앞에서 조용히 멈춰 선다. 누군가는 검은 옷을 입고, 누군가는 말없이 향을 올리고, 누군가는 오래 참아온 눈물을 그제야 흘린다.

죽음은 끝인데, 장례는 끝난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AI 시대에도 우리는 장례를 치를까. 그리고 조문이라는 문화는 계속 남아 있을까.
 
AI는 살아 있는 동안만 우리 곁에 있는 기술이 아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학습하고, 사진과 영상, 메시지와 말투를 기억한다. 그래서 이미 세상에는 고인을 AI로 복원하는 서비스들이 등장하고 있다.

생전의 대화를 기반으로 마치 그 사람이 다시 말하는 것처럼 대화를 이어가는 기술. 어떤 사람은 위로를 받는다. “마지막 인사를 다시 할 수 있었다”고 느낀다. AI 시대의 죽음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디지털 흔적이 계속 남아 있는 상태”로 바뀌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 장례 문화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멀리 있는 사람들은 VR이나 홀로그램으로 조문할 수 있을지 모른다. AI가 고인의 생애를 정리해 추모 영상을 만들고, 생전의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도 있다.


Gemini로 생성한 이미지.
Gemini로 생성한 이미지.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굳이 직접 갈 필요가 있을까?” “온라인으로도 마음은 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이미 많은 문화가 비대면으로 바뀌고 있다. 회의도, 수업도, 관계도 화면으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장례 역시 언젠가는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질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왜 굳이 ‘직접’ 가는 걸까? 하지만 장례에는 효율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사람들은 바쁘고 멀어도 굳이 시간을 내서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사실 조문은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죽음을 되돌릴 수도 없고, 슬픔을 완전히 없앨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간다. 말없이 손을 잡아주고, 같이 밥을 먹고, 잠시 함께 앉아 있는 것. 장례는 정보를 전달하는 자리가 아니라 슬픔을 함께 견디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장례문화는 아마 훨씬 더 개인적인 형태로 변할 것이다. 고인이 좋아했던 음악이 흐르고, 생전의 목소리와 영상이 함께 재생되고, AI가 그 사람의 삶을 정리해 한 편의 기록처럼 보여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람들은 “죽음을 추모하는 공간”보다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하는 공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될 수도 있다. 과거의 장례가 형식과 절차 중심이었다면, 미래의 장례는 추억과 이야기 중심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예전에는 사람이 떠나면 사진 몇 장과 기억만 남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SNS 기록, 영상, 음성 메시지, 대화 기록, 검색 기록까지 한 사람의 흔적이 디지털 공간에 오래 남는다.

그래서 미래에는 “언제 죽음이 끝나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육체는 사라져도 데이터는 계속 남는다. AI는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마치 그 사람이 아직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줄 수도 있다. 이것은 위로일까, 아니면 떠남을 늦추는 일일까. 아직 누구도 정확히 답하지 못한다.
 
AI 시대에도 아마 장례는 계속 남을 것이다. 형태는 바뀔 수 있다. 온라인 추모 공간이 생기고, AI가 고인의 기억을 정리하고, 가상현실 속에서 조문하는 날도 올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여전히 누군가의 마지막 앞에서 잠시 멈추고 싶어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장례는 죽은 사람을 위한 의식이면서 동시에 남겨진 사람이 슬픔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AI는 죽음을 기록할 수 있다. 목소리를 복원하고, 기억을 정리하고, 추억을 더 오래 남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사람은 누군가를 잃고 나서야 그 사람이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장례는 그 빈자리를 천천히 인정하는 시간이다. 기술은 점점 더 발전할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는 고인과 다시 대화하는 시대도 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대가 와도 누군가의 손을 조용히 잡아주는 일,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주는 일까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 앞에서 우리가 끝내 원하는 것은 완벽한 기술이 아니라 함께 슬퍼해 주는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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