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1일 (4)
약자 복지와 재정 균형의 ‘갈림길’…“건강보험 재원 안정화 방안 찾아야” [李정부 보건복지 1년⑤]

약자 복지와 재정 균형의 ‘갈림길’…“건강보험 재원 안정화 방안 찾아야” [李정부 보건복지 1년⑤]

보건복지부는 돌봄 국가책임 강화, 기본생활 안전망 구축,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K-바이오헬스 육성 등을 주요 정책 목표로 내세웠다.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주요 보건복지 정책이 구호를 넘어 국민 체감과 실행 단계에 들어섰는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승인 2026-06-11 06: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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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박효상 기자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박효상 기자
지역·필수의료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고, 중증·희귀질환 보장성을 넓히며, 돌봄과 간병 부담을 낮추는 방향의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재정’이다. 건강보험은 국민 의료비 부담을 낮추는 핵심 사회보험이지만, 동시에 고령화와 의료 이용 증가, 신약·신의료기술 진입 등으로 지출 압박이 커지고 있다. ‘약자 복지’를 강화하겠다는 정책 방향이 지속 가능해지려면 이를 뒷받침할 중장기 ‘재정 안전판’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가 지난 2월 수립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 2026년 시행계획’은 필수의료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의료격차 축소, 건강한 삶 보장, 혁신 신약의 안정적 공급체계 마련 등이 핵심 방향이다. 이 정책이 유지되려면 건강보험 재정이 뒷받침돼야 해 정부는 지출 효율화를 주요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과잉 이용 우려가 있는 의료 항목에 대한 관리 강화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산하에 ‘의료행위 재평가 및 재분류 추진단’을 구성해 의료기술 재평가 결과를 건강보험과 연계하고, 행위 분류체계를 정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재정 투입이 필요한 영역과 효율화가 필요한 영역을 구분하겠다는 취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건강보험에 등재된 의료행위는 약 7760개 항목으로, 이 중 10% 수준인 선별급여를 제외하면 등재 이후에 안전성·유효성 및 급여 적정성 등을 재평가하는 기전이 미흡한 상황이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해 9월 의료기술의 임상적 유용성과 가치 변화를 반영하는 의료기술재평가 제도를 법제화했으며, 평가 결과 안전성·유효성 등이 변화한 의료기술에 대한 건강보험 연계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비급여 의료 관리 역시 중요한 축이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더라도 비급여 진료가 늘어나면 국민 의료비 부담은 줄어들지 않는다. 도수치료, 백내장 수술 등 과잉 이용 논란이 반복된 영역에선 급여·비급여 혼합진료 관리, 실손보험과의 연계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에 정부는 도수치료를 관리급여 대상에 포함하고 질환 치료 목적의 건강보험 적용 횟수를 제한했다. 일반 환자는 연간 15회, 수술·골절 등으로 재활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의학적 판단에 따라 최대 24회까지 5%의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거짓청구 기획조사 실시…사무장병원 단속 강화

정부는 건강보험 거짓청구를 집중 적발하기 위한 기획조사에도 나선다. 조사는 6월 준비기간을 거쳐 이르면 8월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될 예정이다. 실제 진료하지 않은 환자를 진료한 것처럼 꾸미거나, 실제 근무하지 않은 의사가 근무한 것처럼 신고해 진료비를 청구하는 사례 등이 해당한다. 거짓청구로 적발된 건강보험 재정 누수액은 연평균 약 96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체 부당청구 금액의 약 30%를 차지해 건보 재정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과징금은 총 부당금액의 최대 5배까지 가능하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사무장병원 같은 불법 개설 의료기관 등을 단속할 국민건강보험공단 특별사법경찰 제도(특사경) 도입 필요성도 높아진다. 불법개설기관은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개설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의료인이나 약사를 고용해 개설·운영 중인 기관을 말한다. 대표적인 사무장병원 사례로는 지난 2018년 1월 47명이 숨지고 145명이 다치는 등 사상자 192명을 낸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가 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2023년까지 15년간 적발된 불법개설기관은 1717개소다. 이들 기관으로부터 환수가 결정된 금액은 3조3762억원에 달한다. 건보공단은 특사경이 도입되면 수사 기간이 약 3개월로 줄어들고, 2000억원의 재정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특사경 제도는 이재명 대통령도 강조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6일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건강보험 수가 조정, 재정 확보를 위해선 이상한 돈 빼 먹는 사람을 단속해야 한다”며 “금융감독원도 민간기관인데 특사경 권한을 줬다. 조사하는 데 뭐 문제가 있겠나. 대신 (건보공단이) 확실하게 많이 잡아 달라”고 당부했다.

의료개혁에 10년간 누적 적자액 27조8000억↑

정부가 재정 건전성 확보에 나선 이유는 건강보험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가장 큰 부담은 고령 인구 증가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급여비 상승과 직결된다. 건강보험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지출한 진료비는 48조9011억원으로, 전체 진료비(110조8029억원)의 약 44.1%를 차지했다. 노인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544만3000원으로, 전체 건강보험 적용 인구 1인당 연평균 진료비(215만5000원)보다 2.5배 높은 수준이다.

의료개혁을 반영한 건강보험 재정 전망(2026~2035년). 자료=국회예산정책처
의료개혁을 반영한 건강보험 재정 전망(2026~2035년). 자료=국회예산정책처
올해 건강보험 재정 적자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정부가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목표로 추진 중인 의료개혁 투자가 재정 부담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는 지난 9일 발간한 ‘의료개혁 1·2차 실행방안을 반영한 건강보험 재정 재추계’ 보고서를 통해 의료개혁 실행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투자를 반영하면 누적 준비금 소진 시점은 오는 2029년으로 2년 앞당겨지고, 향후 10년간 누적 적자액은 기준선 대비 27조8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계했다. 의료개혁 추진을 반영하지 않더라도 올해 4000억원의 건보 재정수지는 적자로 돌아서고, 2035년 37조5000억원으로 적자 규모는 확대될 전망이다.

정부는 2024년부터 2028년까지 5년간 의료개혁 과업에 총 20조원 이상의 건보 재정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과업으로는 필수의료 수가 인상과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및 포괄2차 종합병원 지원사업 등이 포함됐다. 지난해 실적치만 놓고 보면 이미 1조5868억원의 재원이 투입됐다.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지원사업에 2조1352억원, 포괄2차 종합병원 지원사업에 2046억원, 필수특화 기능 강화 지원사업에 75억원이 소요됐다. 간병비 급여화와 상병수당 제도화 등 국정과제 이행에 따른 건강보험 지출 증가는 이번 추계에서 고려하지 않아 실제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예정처는 의료개혁의 정책 방향 자체는 필요하다면서도 의료개혁 비용을 건강보험 재정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앞으로의 추가 재정 소요를 반영한 중장기 재정 확보 계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예정처는 “2028년 이후에도 수가 가산에 따른 지출 증가가 지속될 예정이어서 중장기 재정 안정성을 검토해야 한다”며 “건강보험 지출 효율화와 성과 관리를 통해 의료개혁 투자 재원의 일부를 보전하는 한편 재원 안정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고지원, 법정 기준 미달…“노동 연령층 부담 커져”

전문가들도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면 단년도 보험료율 결정이나 개별 급여 확대 논의를 넘어 중장기 재정 운용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짚었다. 건강보험 적립금을 어느 수준으로 유지할지, 정부 지원은 어떻게 안정적으로 확보할지, 필수의료와 중증질환 보장성 확대에 필요한 재원은 어떤 방식으로 마련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국고지원의 안정성은 반복적으로 제기돼 온 과제다. 건강보험은 보험료를 주 재원으로 하지만, 국가가 일정 부분을 지원하는 구조다. 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는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의 20%를 정부가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14%는 일반회계, 6%는 담배부담금으로 조성된 건강증진기금에서 마련하게 돼 있다.

그러나 국고지원은 매년 10% 초반대로 법정 기준에 못 미친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2024년까지 법정 기준대로라면 정부가 지원해야 했을 금액은 149조7617억원에 달하지만, 실제 지원액은 128조332억원에 그쳤다. 국고지원 규모와 방식이 매년 예산 편성 과정에 좌우되면 중장기 재정 운용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 소장은 “역대 정부가 그동안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던 법정 지원 약속부터 지켜야 한다”며 “이번 정부도 공약을 마련할 때 국고지원 이행을 약속했지만, 실제 정책 추진 과정에서 어느 순간 빠진 듯한 모습이다”이라고 지적했다.

건보 재정 건전성 악화는 젊은 세대의 부담 증가와 직결된다. 김 소장은 “건강보험 보장률을 보더라도 젊은 세대인 노동 연령층은 고령층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노동 연령층의 부담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제언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탈모 치료 급여화와 같은 개별 보장성 확대 논의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요즘은 탈모를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확대 검토를 주문한 바 있다. 탈모 치료제 급여화는 지난 20대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였다.

김 소장은 “보장성 정책은 부분적인 민원이나 즉흥적 판단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어떤 질환과 영역을 우선 보장할 것인지, 재정 여력은 어느 정도인지, 국민 전체의 의료 필요와 형평성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큰 틀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나백주 을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보험료율을 높여 국민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방식은 사회적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며 현실적인 방안은 지출 효율화밖에 없다고 짚었다. 비급여와 혼합진료를 관리하고, 일차의료를 강화해 대형 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는 구조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교수는 “혼합진료는 비급여 지출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급여 진료비 상승에도 영향을 미친다”면서 “지출 증가로 재정수지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는 만큼, 결국 지출 구조를 어떻게 줄이고 효율화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다”라고 피력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도 “경증 환자의 대형 병원 집중, 비효율적 입원 관행, 행위별 수가제가 유발하는 과잉 공급 등이 지출 팽창의 뿌리”라며 “이 구조를 건드리지 않으면 어떤 수입 조치에도 한계에 부딪힌다”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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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 제약바이오 이슈를 쉽고 균형 있게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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