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3일 (3)
‘의료분쟁조정법’ 국회 통과…쟁점은 ‘중과실’ 범위

‘의료분쟁조정법’ 국회 통과…쟁점은 ‘중과실’ 범위

의료사고 설명의무 시점 7일 이내로 규정
불가항력 의료사고 국가책임 강화
의료계 반발 변수…“방어진료 내몰아 의료 현장 위축”

승인 2026-04-23 18:20:53 수정 2026-04-23 18:36:16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필수의료 행위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중대한 과실’ 등이 아닐 경우 국가가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의료인의 사법리스크를 덜기 위한 법이지만, 정작 의료계가 중과실 범위가 모호하고 부적절한 개념이 포함됐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향후 내용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2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위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은 22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발의된 6건의 관련 법안을 병합 심사해 대안을 마련했다.

정부는 그동안 의료사고로 인한 의료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필수의료 보험료 지원, 불가항력 분만사고 보상한도 상향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해 왔다. 다만 의료사고 안전망을 보다 체계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법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복지부는 이번 개정안이 환자의 신속하고 충분한 피해 회복, 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을 최우선에 두고 의료계와 환자·소비자단체,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여야 합의로 처리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우선 개정안에서 환자의 사망, 의식불명, 중증장애 등 중대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보건의료기관 개설자 등이 환자에게 사고 내용과 경위를 설명하도록 했다. 설명의무 이행 시점은 의료사고 발생 사실을 안 날부터 7일 이내로 규정했다. 또 설명 과정에서 이뤄진 위로, 공감, 유감 표현은 재판상 증거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해 의료진이 보다 적극적으로 설명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의료분쟁의 신속하고 전문적인 해결을 위해 조정 당사자 조력제도인 환자대변인 제도와 옴부즈만 제도를 법제화했다. 아울러 필요할 경우 조정기일을 2회 이상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당사자의 재감정·추가감정 신청권도 명시했다. 자동개시 대상 사건 역시 기존 사망,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중증장애에서 일반장애와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관련 의료사고까지 확대된다.

책임보험 의무가입 제도도 도입된다.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책임보험 또는 공제 가입을 의무화해 의료인의 배상 부담을 줄이고, 환자의 신속한 피해 회복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특히 고위험 필수의료 고액배상 보험에 대해선 국가가 보험료를 의무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책임도 강화된다. 기존에는 분만사고에 한정됐던 보상 대상을 앞으로는 고위험 필수의료 행위까지 넓히기로 했다. 정부는 향후 의료계와 전문가 논의를 거쳐 대상 범위와 유형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고위험 필수의료 행위에 대한 형사부담 완화 규정도 신설됐다. 개정안은 고위험 필수의료 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해 중과실이 없는 경우 형사부담을 덜어주는 내용을 담았다. 책임보험 가입, 설명의무 이행, 손해 전액 배상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했다. 기소되더라도 재판부가 사정을 고려해 형을 감면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의료사고로 상해 결과가 발생한 경우에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반의사불벌 특례도 확대했다.

복지부는 향후 법조계와 의료계, 환자·소비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설치해 고위험 필수의료 행위와 중대한 과실 여부를 사전 심의하는 등 의료사고 수사를 보다 전문적이고 신속하게 지원할 방침이다.

개정안은 공포 후 1년 뒤부터 시행된다. 복지부는 하위법령 개정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해 고위험 필수의료 행위 범위, 책임보험 보장 기준,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운영방안 등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이번 개정으로 의료사고와 관련한 환자의 권익 보호와 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 환경 조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며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통해 환자와 의료인이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는 의료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수술실 안으로 의료진이 들어가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일부 환자단체는 이번 법안에 대해 환자의 권익을 한 단계 높이는 진일보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의료분쟁조정법의 본회의 통과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상생 모델의 시작이어야 한다”며 “이제는 의료계와 환자단체, 정부가 서로를 불신하며 대립하기보다, 환자의 생명을 지키고 진료 현장의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의료계의 반발이 변수다. 전공의들은 의료분쟁조정법이 젊은 의사들이 중증·핵심 의료 현장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출발점이라면서도 법안에서 명시한 ‘중과실’의 범위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중증·핵심 의료 현장에선 최선의 진료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악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를 ‘중과실’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재단하는 것은 사회적 오해와 불신을 심화시키고, 결국 의료진을 방어진료로 내몰아 의료 현장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이후 구체화될 하위 시행령 제정에 대해선 “가장 열악한 환경과 최일선에서 환자를 직접 마주하는 젊은 의사들의 목소리가 배제된 채 탁상공론으로 시행령이 마련된다면 이는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젊은 의사들의 중증·핵심 의료 현장 이탈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향후 하위 법령 마련 과정과 의료사고심의위원회 구성에 젊은 의사들의 참여 공식화 △최선을 다한 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 실질적인 배상 지원 체계와 보상기금 안전망 구체화 △중증·핵심 의료에 대한 보장을 강화하고 법안 및 하위 법령에서 ‘중과실’이라는 독소 조항 철폐 등을 요구했다.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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