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9일 (6)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119)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119)

'메트로폴리탄의 모나리자'는 사전트의 <마담 X> 초상 (상)

승인 2026-05-04 14:22:09 수정 2026-05-04 14:26:24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 마담 X (버지니 아멜리 아베뇨 고트로), 1883~84, 208.6×109.9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870년대 파리에 도착한 젊은 화가 존 싱어 사전트는 불과 10년 만에 초상화계의 라이징스타가 되었다. 그 정점에 선 작품이 1884년 공개된 〈마담 X〉였다. 

1880년대 파리, 화려한 외모와 독특한 매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루이지애나 출신의 버지니 아멜리 아베뇨 고트로(Virginie Amelie Avegno Gautreau, 1859~1915)였다.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파리로 이주한 뒤, 은행가와 결혼하며 순식간에 파리 상류 사회의 중심에 섰다.

이 매혹적인 인물을 주목한 화가가 바로 사전트였다. 그는 파리 살롱전에 출품할 대작을 찾고 있었고, 고트로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초상화를 제안했다. 
 
<마담 X>는 전신 초상화로 세로 2미터가 넘는다.

사전트는 그녀를 시대를 앞서가는 ‘현대적 아이콘’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드레스의 오른쪽 어깨 끈이 흘러내린 모습은 그녀의 대담한 개성을 강조하는 장치였다. 하지만 당시 관람객들은 이를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프랑스 사회의 보수적 예절에 도전하는 파리 여인, 혹은 미국에서 온 침입자로 여겨졌던 그녀는 찬사와 동시에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녀의 화장법을 ‘과도하다’고 지적하며 도덕성까지 문제 삼았고, 결국 고트로의 어머니는 울면서 작품을 치워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두 아웃사이더의 계산된 협업이었다는 사실이다. 파리에서 인정받고 싶었던 미국인 화가 사전트, 그리고 파리 사교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던 루이지애나 출신의 고트로. 그들의 만남은 서로의 야망이 교차하는 순간이었고, 결과적으로 〈마담 X〉는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 많고도 기억에 남는 초상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마담 X> 부분

이런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며칠만에 고트로는 반짝이는 어깨 끈이 달리고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이 파리에서 목격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는 노이즈마켓팅이 되어, 사전트가 프랑스를 떠나 영국과 미국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

세월이 흐른 뒤, 사전트는 이 작품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팔며 “내가 한 일 중 가장 최고”라고 자부했다. 오늘날 이 그림은 “미국 예술 컬렉션의 모나리자”라 불리며, 당시의 논란은 오히려 작품의 전설을 완성하는 장치가 되었다.

<마담 X>는 사회적 규범과 예술적 자유가 충돌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한때는 파격이었지만 지금은 고전이 된 이 작품은, 예술이 시대를 넘어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말해준다.

<마담 X> 부분
 
파리 사교계에는 한때 ‘전문 미인(professional beauty)’이라는 독특한 표현이 있었다. 재능이나 직업적 성취 대신, 타고난 아름다움과 매혹으로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버지니아 고트로였다.

프랑스 크리올 출신인 그녀는 자신보다 두 배나 나이가 많은 은행가와 결혼했지만, 파리 상류사회에서는 아름다움과 불륜 소문으로 악명이 높았다. 라벤다 가루를 바르고 외모에 자부심을 가졌으며, 예술가들에게는 거의 신화적인 존재였다. 미국 화가 에드먼드 시먼스는 “사슴을 쫓듯 그녀를 스토킹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사전트 역시 그녀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실제로 그는 친구에게 “나는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은 강한 욕망이 있고, 그녀가 그것을 허락할 것이라 믿는다”고 편지를 썼다.
 
<마담 X> 부분

사전트는 살롱에서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거대한 캔버스를 택했고, 모델의 포즈 역시 전례 없이 대담했다. 몸은 정면을 향하되, 얼굴은 옆으로 돌리고, 팔은 뒤로 뻗어 테이블에 기대는 자세였다. 이로 인해 목과 팔에 긴장감이 생기며, 고트로의 우아한 실루엣이 극적으로 강조되었다.

사전트는 그녀의 피부를 표현하기 위해 백연(白煙, 흰 연기색)과 로즈 메더(Rose Madder, 꼭두서니에서 추출한 투명도가 높은 화사한 핑크색), 주홍색, 비리디언(Viridis, 청록색), 뼈 검정(Bone Black/Ivory Black) 같은 색을 섬세하게 조합했다. 그 결과, 고트로의 창백한 피부는 마치 의도된 “귀족적 창백함”처럼 빛을 발하며, 검은 드레스와 강렬한 대비를 이루었다. 흰 피부 위로 드러난 붉은 귀는 고트로의 원래 피부색으로, 오히려 생생한 현실감을 더했다.

작업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친구에게 “밝은 장미색 톤을 덧칠했더니 모델의 가냘픈 체형이 훨씬 더 돋보였다”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흥미를 잃어갔고, “여름은 끝났고, 코트 영지의 즐거움도 끝났다”라며 회의적인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면 고트로는 끝까지 열광적이었고, 자신이 걸작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고 믿었다.

<마담 X> 부분

테이블은 그녀의 몸을 지탱하며 곡선을 따라 흐르고, 관능적인 포즈는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멎게 했다. 원래 전시 당시에는 드레스의 끈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려 있어, 언제든 더 노출될 수 있다는 암시가 담겨 있었다. 한 비평가는 “한 번만 더 몸부림치면 부인은 자유로워질 것이다”라고 썼다.

이 그림의 에로틱한 긴장은 대중적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류층 특유의 은밀한 매혹을 드러낸다. 창백하게 빛나는 피부, 잘록한 허리, 엄격한 옆모습은 관람객을 유혹하기보다 ‘모델의 철저한 자기 통제’ 속에서 귀족적 매력을 과시한다. 영국 왕실에는 철저한 식이요법으로 과체중이 없다. 바로 그 절제된 관능이 파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고, 동시에 그림을 불멸의 논쟁작으로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마담 X〉는 당시 파격적인 이미지로 논란을 불러왔지만, 오늘날에는 사전트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고트로의 초상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인의 기록을 넘어, 아름다움이 사회적 권력과 예술적 영감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계속>


최금희 작가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 영등포문화원, 도서관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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